‘성역화’ 명분이라면 축구장은 없애도 되나…효창운동장 사라질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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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토도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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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의 또 하나 역사적 체육 공간인 효창운동장이 공원 성역화 논의 속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국가보훈부 업무보고에서 효창운동장 철거 및 공원화 방안 검토를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효창공원을 성역화할 필요가 있다. (추모공원화를 반대하는) 민원은 민원대로 처리하면 된다”며 축구장을 포함해 효창 공원을 성역화하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축구장 철거 등을 포함해 공원화 사업에 필요한 예산이 2022년 기준 약 1798억원이라는 보고도 받았다.
효창운동장은 서울에 남은 극소수 축구장 중 하나다. 서울 관내 학생들, 성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인조잔디 구장이다. 효창 운동장이 사라지면 가뜩이나 부족한 서울 관내 축구장 사정은 더욱 열악해진다.
효창공원은 조선 제22대 정조 임금의 큰 아들로 세자책봉까지 받았으나 5세 때 죽은 문효세자와 몇 달 후 죽은 그의 어머니 의빈 성씨의 묘원인 효창원이 있던 자리였다. 묘역이 넓고 송림이 울창했다. 안타깝게도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 주둔지로 이용되면서 무덤들은 경기 고양시에 있는 서삼릉으로 강제 이장 당했다. 해방 후 1946년 김구 선생이 일본군 숙영지를 철거하고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삼의사의 유해와 이동녕, 조성환, 차리석 등 독립운동가 묘소를 효창 공원으로 이장했다. 1949년 별세한 김구 선생도 유언에 따라 동지들 곁에 안장됐다(묘소 앞에는 2002년 백범 김구 기념관이 개관했다). 이후 1956년 이승만 정부는 독립 운동가들 묘를 이장하고 효창운동장을 건립하겠다는 발표했다. “성묘를 함부로 파서 헐어 트리는 것은 생명을 조국광복에 바친 선열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는 반대에 부딪치면서 축소해 건설한 게 지금 효창운동장이다.

효창 운동장 존치 여부는 동대문야구장 기억을 떠올린다. 동대문야구장은 1905년 국내 최초 야구 경기가 열린 장소로, 일제강점기 경성운동장과 경성야구장을 거쳐 해방 이후 한국 야구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고교야구 대회와 실업·대학야구가 열리며 ‘아마추어 야구의 메카’로 불렸고, 프로야구 출범 이후에는 MBC청룡의 임시 홈구장으로도 활용됐다. 그러나 프로야구 흥행 구조 변화, 아마추어 야구 쇠퇴, 수익성 악화가 겹치면서 서울시는 2006년 철거를 확정했다. 2007년 동대문야구장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들어섰다.
안중근 의사 친조카 안원생 선생은 김구 선생 비서 겸 통역이었다. 그는 축구를 무척 잘했다. 학계(상해 교통대학 졸업)와 스포츠계에서 인맥을 쌓은 안 선생을 중국 측이 높이 봤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인맥 덕분에 1943년 카이로 회담을 앞두고 김구 주석과 김원봉 광복군부사령이 장제스 국민당 총통을 만날 수 있었다는 해석도 있다. 안 선생은 달리기와 농구, 수영도 잘 했다. 1930년 동아일보는 “안원생은 체력이 매우 좋아서 한번 출장하면 피로한 기색이 없었다. 매우 강하게 상대를 압박해서 상대가 중앙선을 넘지 못하게 만들었다. 안원생은 공수를 겸비한 천재선수다”라고 쓰기도 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유명 인물의 묘역 위에 상설 스포츠경기장을 추가로 건설한 사례는 사실상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묘지와 경기장이 인접한 형태로 공존하는 경우는 있다. 이때도 두 공간은 물리적·기능적으로 구분돼 있다. 영국 글래스고 셀틱 파크는 인근 공동묘지와 가까이 있지만 묘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도시 공간을 나눠 사용하고 있다. 미국 보스턴 펜웨이 파크 역시 역사적 묘지가 인근에 위치해 있으나, 묘지는 독립된 보존 공간으로 유지된다. 해외 사례의 공통점은 추모 공간의 존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생활·문화 공간과의 공존 방식을 모색한다는 데 있다.
축구는 일제 강점기에 민족을 단결시키고 청년을 수양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960년 초대 아시안컵도 열렸다. 김구, 윤봉길, 이봉창, 안중근 등은 독립운동가 묘역에 있는 축구장이라면 여느 축구장과 다른 한국 역사적 상징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효창 축구장을 살리면서 공원 성역화는 진정으로 불가능한 것인가. 독립운동가들이 적막이 흐르는 추모공간을 원할까 아니면 활기넘치는 체육공원을 원할까. 그들도 자신의 묘 옆에 있는 축구장에서 일제강점기 나라와 국민을 하나로 묶은 축구를 하는 손자, 손녀들을 지켜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축구계 관계자는 “효창 운동장을 살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주 찾아와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할 수 있는 활기찬 추모공원을 만드는 방안을 정부가 강구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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