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신치용부터 박철우 그리고 손녀 박소율·박시하까지, 3代가 배구로 이어졌다 [MD더발리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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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더발리볼 = 이보미 기자] <더발리볼>은 배구라는 세계에서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배구로 묶인 가족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12월호에는 3대가 배구로 이어진 가족을 만났다. 할아버지는 배구 선수 그리고 감독으로서 한국 배구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아버지 역시 배구 선수에 이어 지도자로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13년생과 2016년생의 두 딸은 이제 막 배구공을 잡기 시작했다. 신치용 전 감독과 박철우 우리카드 코치, 박소율과 박시하의 이야기다.
‘호랑이 사령탑’에서 ‘손녀 바보’가 된 할아버지
“소율이가 프로 가는 거 보려고 오래 살 거야”
프로 스포츠 사상 첫 7년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이 세운 팀이 있다. 남자 프로배구 삼성화재다. 그리고 그 수장은 신치용 감독이었다. 1955년생인 그는 배구 선수 출신으로 1980년 당시 실업팀 한국전력에 입단했다. 1984년 현역 은퇴 이후에는 1995년까지 한국전력 코치로 오랜 경험을 쌓았다. 이 기간에 대표팀 코치를 맡기도 했다. 1995년 삼성화재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됐다. 1997년 처음으로 슈퍼리그에 참가한 후 ‘9연 연속 우승’ 위업을 달성했고, 2005년부터 출범한 V-리그에서도 2007-2008시즌부터 2013-2014시즌까지 7년 연속 챔피언에 오르며 배구 강호의 위상을 떨쳤다. 지금까지도 삼성화재는 통산 8회 정상에 올라 역대 최다 우승을 기록 중이다. 그렇게 신치용 전 감독은 2015년까지 20년 동안 삼성화재를 이끌며 한국 배구의 새 역사를 썼다. ‘호랑이 사령탑’으로 알려진 명감독이었다. 이후 삼성화재 단장, 상임 고문을 거쳐 2019년 진천국가대표종합훈련원 선수촌장을 역임했다. 2023년부터는 한국체육산업개발 대표이사로서 공공 스포츠 시설 운영 및 스포츠 행정 분야에 관여하고 있다.
또한, 농구선수 출신인 딸 신혜인 씨가 2011년 당시 배구 선수 박철우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장인어른과 사위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삼성화재에서 감독과 선수로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이후 신치용 전 감독은 ‘손녀 바보’가 됐다. 2013년과 2016년에 손녀 박소율, 박시하가 태어났다. 특히 2013-2014시즌 삼성화재가 7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는 순간 박소율도 함께 했다. 그는 “2014년 우승 당시 소율이가 첫돌이 됐을 때다. 그 때 같이 찍은 사진도 있다. 그때부터 손녀 바보라고 부르더라”면서 “그렇게 작은 아이가 이제 이렇게 컸다. 중학교도 들어가고 배구 선수가 됐다”고 말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박소율과 박시하도 배구 선수다. 박소율은 작년부터 파장초에서 본격적으로 배구를 시작했다. 동생 박시하도 언니를 따라 배구팀 소속이 됐다. ‘손녀 바보’인 할아버지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이면서도 아낌없는 응원을 다짐했다.
Q. 삼성화재의 창단 30주년 행사에 가족이 모두 모였습니다. 이 가족의 배구 이야기 속에서 삼성화재를 빼놓을 수 없죠.
신치용 삼성화재 초대 감독으로 와서 감독으로 20년, 단장 3년, 고문으로 2년을 있었죠. 삼성화재에서 25년이나 있었는데, 제 인생에서 삼성화재를 빼놓고 얘기를 할 수가 없어요. 실업 시절 8번, 프로에서도 8번 우승까지 했잖아요. 최근에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만 김상우 감독이 잘 할 거라 생각해요. 30주년 행사가 열린 날(11월 8일) 삼성화재가 KB손해보험을 이기기도 했잖아요. 다행이죠.
Q. 배구 선수 사위에 이어 손녀들까지 배구 공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소식을 듣고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신치용 처음에는 배구 선수를 하지 말라고 했어요. 얼마나 힘든지 아니깐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죠. 그런데 손녀가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하겠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언제든지 하고 싶지 않으면 그만둬도 된다고 했고요. 기본적인 공부 소양은 쌓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두 명 모두 배구 선수를 한다고 하는데, 경기장 가서도 경기를 못 보겠더라고요. 어찌됐든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야죠(웃음). 원래 후배들이나 제자들이 먼저 배구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으면 말은 안 해야 한다는 게 제 지론이에요. 그런데 손녀가 하나도 안 물어봐요.
박철우 소율이가 그런 얘기를 안 해서 장인어른이 서운해 하셔요(웃음). 할아버지한테는 가끔 장난감 사 달라고 하는 게 전부예요.
신혜인 오히려 사위가 제일 많이 물어봐요.
신치용 저도 코치를 오래 했잖아요. 사위도 지금 코치이기 때문에 코치로서 해야 할 임무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죠. 감독의 철학에 맞게 잘 따르면서도 선수들이 열심히 하게끔 만들어주는 일을 해야 해요. 배구는 정해진 규격의 코트 안에서 어택라인, 안테나, 네트를 두고 포지션까지 정해놓고 하잖아요. 작전이 많이 나올 수 없어요. 결국 기본기죠. 기본기가 제일 중요하고, 이 기본기를 위해서는 반복 훈련밖에 없어요. 그런 여건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사실 최근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죠.
Q. 그래도 손녀들은 어떤 배구 선수가 될 것 같나요.
신치용 소율이는 책임감 있는 배구, 시하는 영혼이 자유로운 배구를 해요. 소율이는 본인 만의 잣대가 뚜렷해요. 시하는 그보다 훨씬 자유롭죠. 예전에 신진식 공격 자세를 놓고 일본에서 좋지 않은 자세라고 했거든요. 전 아니라고 했죠. 얼마나 자유로워요. 본인이 제일 잘하는 걸 하면 되는 거예요. 틀 안에 들어가 있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죠.
박철우 소율이는 진짜 외할아버지를 많이 닮았어요. 혈액형도 RH-로 같아요. 식성도 닮았고요.
신치용 사실 딱하죠. 초등학교 때 뛰어놀아야 하는데 운동을 하고 있잖아요.
신혜인 소율이는 늘 뭔가 해 달라는 말을 안 해요. 가끔 할아버지한테 경기 보러 오라고 말하면 아빠가 무조건 오세요. 손녀들을 짠하게 보시죠. 소율이가 운동하다가 아플 때도 있는데, 저흰 아파도 학교 가서 쉬라고 하면서 보내거든요. 그러면 아빠가 옆에서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고 말하세요. 그럼 사위가 놀라죠(웃음).
박철우 저한테는 안 그러셨잖아요(웃음).
신치용 (소율이를 바라보며) 할아버지는 소율이가 프로팀 가서 뛰는 거 보고 싶어요. 그거 보려고 오래 살 거야.

‘아빠이자 엄격한 배구 선배’
박철우 “운동선수에게는 끈기가 가장 중요해요”
신치용 전 감독의 사위이자, 박소율과 박시하의 아버지인 박철우 코치 역시 한국 남자배구의 토종 아포짓으로 맹활약했다. 여전히 V-리그 남자부 역대통산 득점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1985년생 박철우 코치는 199cm 왼손잡이 아포짓으로 이름을 날렸다. 현재 V-리그에서는 정지석(대한항공), 허수봉(현대캐피탈), 임동혁(대한항공) 등이 고졸 신화의 계보를 잇고 있는 가운데 박철우는 2004년 역대 두 번째 고졸 신인으로 등장했다. 당시 실업팀 현대캐피탈에 입단했고, 2010년에는 ‘전통 라이벌’ 삼성화재로 이적했다. 2020년에는 한국전력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
2005년에 출범한 V-리그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박철우 코치는 V-리그 19시즌 동안 564경기 1945세트 출전해 6623득점을 기록했다. 득점과 공격 부문 역대 통산에서도 2위, 서브 3위, 블로킹 8위에 랭크돼있다. 그가 걸어온 시간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후 2023-2024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KBSN 스포츠 해설위원으로 인생 제2막을 열었다. 올해는 우리카드 코치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제는 배구선수 박소율과 박시하의 학부모이기도 하다. 파장초 배구부를 열렬히 응원하는 ‘북잡이’로도 알려졌다.
Q. 아빠 박철우는 두 딸이 배구를 한다고 했을 때 어땠나요.
박철우 둘 다 운동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데 배구나 농구만은 아니었으면 했죠. 그래서 다른 운동을 시켰는데 아무래도 지금까지 봐온 게 배구다 보니, 소율이도 배구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6개월 유예기간을 줬어요. 배구도 하면서 영어학원에서 레벨업 목표를 이루면 시키겠다고 했는데 하더라고요. 소율이가 영어학원에서 레벨업 하자마자 ‘나 이제 배구 보내줘’라고 했어요. 아직 어리지만 6개월 동안 버티는 것도 봤고, 너의 선택이니 해보라고 했죠. 둘째는 원래 배구에 관심이 없었는데 둘째가 배구하는 걸 보고 배구장에 있는 게 즐거운 걸 알게 됐어요. 둘째는 테니스를 하고 싶어 했는데, 더워서 못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제일 즐거워하는 것 같아요(웃음).
Q. 딸들이 배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어땠나요.
박철우 사실 처음에는 직접 가서 보니 어색했거든요. 부모로서 긴장도 됐고요. 그 모습을 아내가 보고선 ‘배구인 박철우야? 아니면 아빠로 온 거야?’라고 묻더라고요. 그 한 마디에 북 치면서 응원하기 시작했죠. 이제 북잡이로 유명해요(웃음). 그리고 뭔가 이뤄내는 모습이 좋아보였어요. 초등학교 배구는 3세트까지만 하는데, 3세트 15점 경기를 해요. 아이들이 살면서 얼마나 긴장을 해봤겠어요. 3세트 듀스에 가서 조마조마 하는 모습만 봐도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았어요. 시하도 아직 3학년이지만 운동신경이 좋아서 곧잘 하는 것 같아요.
Q. 딸들에게 엄격한 배구 선배 같기도 해요.
박철우 일단 배구를 하겠다고 하니 전폭적으로 도와주려고 해요. 하지만 운동선수로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도 많이 얘기해주고요.
박소율 아빠가 연습을 많이 하면 알아서 자유로워진다고 하셨어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실력이 늘 수 없다고 말해주셨어요.
박철우 쉬고 싶을 수 있는데 못 쉬게 하죠. 운동선수는 끈기가 가장 중요해요. 꾸준하게 그리고 흥미를 잃지 않게끔 만들어주려고 합니다.
신치용 초등학교 때부터 자세가 좋아야 하는데 소율이는 보니깐 자세가 좋더라.
박철우 소율아, 할아버지가 자세 좋다는 말 진짜 안 하시는데, 이거 엄청난 칭찬이야(웃음).
Q. 아이들이 배구를 하면서 얻었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요.
신혜인 요즘 아이들은 결핍 없이 자라잖아요. 하지만 팀 스포츠를 하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초등학교 팀들도 지방에서 대회를 많이 하는데, 그러면 거의 일주일 동안 떨어져서 지내잖아요. 그런데 소율이가 언니들 따라서 속옷도 직접 빨기도 하더라고요. 꼭 배구 선수로 끝까지 뛰지 못하더라도 배우는 게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파장초 주장 박소율
KB손해보험 야쿱 보고 놀란 사연
Q. 소율이는 왜 배구 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박소율 전에는 골프를 했는데 점점 시시해지더라고요. 또 아빠가 배구하는 게 멋있어 보여서 갑자기 배구가 확 끌렸어요. 그리고 새벽에 친구들이랑 연습도 했는데 서브가 느는 게 신기했어요.
신혜인 파장초로 전학가기 전에 생활 체육으로 배구 클럽팀에서 배구를 했어요. 그 때 아이가 재미를 느낀 것 같아요.
Q. KB손해보험의 아시아쿼터 선수인 야쿱 보고 놀랐다고요?
박소율 왜 외국인 선수로 키 작은 선수를 뽑았냐고 물어봤어요. 그런데 배구를 엄청 잘하는 선수더라고요. (임)성진 삼촌이랑도 머리 하나 차이가 났어요. 저번에 6학년 친구들이랑 졸업여행으로 일본 도레이 팀 경기를 보고 왔는데 거기서도 키가 작은 신인 선수가 엄청 잘했어요. 키가 작은데도 배구를 잘해서 놀랐어요.
신치용 아직 국내 선수가 누가 좋다는 건 없는 것 같은데, 키 작은 선수들을 유심히 보는 것 같아요.
신혜인 주변에서 키가 많이 클 거라 기대를 하시는데 사실 걱정이 돼요. 전국 대회에 나가면 소율이가 작은 편이거든요.
신치용 꼭 그렇지 않아. 여오현이도 중학교 때 제일 컸어(웃음).
신혜인 아무래도 경기가 열리는 현장에 가면 누구 손녀, 누구 딸 그러세요. 왼손잡이이기도 하고, 많이 클 거다고 많이 말하시는데 그런 걱정이 있어서 키가 작은 선수들을 인상 깊게 보는 것 같아요.
Q. 소율이는 어떻게 보면 ‘신치용 손녀’, ‘박철우 딸’이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해요.
박소율 좀 더 잘 해야할 것 같고, 잘 보여야할 것 같은 부담이 있긴 해요. 그런데 경기를 할 때는 별로 생각이 안 드는 것 같아요.
신혜인 멘털이 강한 편인 것 같아요.
신치용 그럼 파장초 주장인데. 이제 중학교 가면 힘들데이.
Q. 시하는 언니랑 같이 배구를 해서 든든할 것 같아요.
박시하 배구가 재밌긴 한데 언니한테 많이 맞아요!
신혜인 시하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소율이는 원칙대로 하는 FM이에요(웃음). 소율이는 시하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할까봐 옆에서 잔소리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죠.
박철우 둘이 같은 유치원에 다녔는데 시하는 등원한 첫 날부터 그랬어요. 시하가 들어가면서 신발, 옷 다 던지고 들어가면 소율이가 시하네 교실에 갖다놓고 그랬대요.
Q. 소율이는 힘들어서 울기도 했다는데, 그럴 때마다 어떻게 기분을 풀려고 해요?
박소율 경기를 하면서 잘 안 되거나 지고 있을 때 스트레스를 받아서 눈물이 나요. 예전에는 많이 울었는데 요즘에는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하고 넘기려고 해요.
Q. 끝으로 아빠이자 배구 선배가 소율, 시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박철우 배구 선수로서 엄청난 성공을 바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배구를 하면서 더 즐겁고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평생 살아가면서 배구로 행복을 느끼는 게 중요해요. 또 좌절을 느낄 때도 있겠죠. 그때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았으면 하고요. 특히 소율이가 저랑 비슷하죠. 왼손잡이잖아요. 물론 V-리그에서는 외국인 선수가 많아서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점프로 괜찮고 공격수로 뛰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신치용 왜? 외국인 선수보다 더 잘하면 되지!
Q. 그럼 장인어른이 사위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신치용 코치는 코치다워야 한다. 넘쳐도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된다. 또 부지런해야 한다. 선수들에게도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 나도 대표팀 코치 시절에 감독 세 분을 모셨다. 배구 선수로서 한 획을 그었지만 코치는 돋보여선 안 된다. 감독의 방향을 잘 따라갔으면 좋겠다.

글. 이보미 기자
사진. 송일섭 기자
(본 기사는 배구 전문 매거진 <더발리볼>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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