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 작심발언 "황선홍 선배랑 싸울 뻔했어…EPL 오퍼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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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전 국가대표 수비수 김태영(55)이 현역 시절 황선홍 대전하나시티즌 감독과 싸울 뻔한 비화를 털어놨다.
현재 라오스 프로축구 1부리그 참파삭 아브닐을 이끄는 김태영 감독은 최근 유튜브 채널 '안정환 19'에 츨연해 "훈련을 할 때도 항상 100%로 임했다. 이 탓에 실제로 (팀 내 공격수와) 다툰 적이 있다. 황선홍 선배, 안정환 등과 경기장에서 싸울 뻔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현역 시절 별명이 '아파치'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매섭게 전투를 치르는 아파치 전사처럼 강력한 몸싸움으로 상대 공격수를 핍박해 붙은 별칭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축구대표팀 감독은 "한국 선수들은 지나치게 얌전하다"며 전투성을 촉구한 바 있는데 김 감독만큼은 예외로 둘 만큼 파이터형 디펜더로서 한국축구사에 한 획을 그었다.
'수비 지능' 역시 출중했다. 거친 대인마크와 투지 넘치는 공중·지상볼 경합으로 90분 내내 위압감을 뽐냈음에도 전남 원클럽맨으로서 11시즌간 활약하면서 단 한 장의 레드카드도 받지 않는 영민성까지 발휘했다. 아울러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고 센터백과 윙백을 오가는 멀티성 또한 지녀 1998 프랑스 월드컵부터 2개 대회 연속 주전 수비수로 피치를 누볐다. 통산 A매치 출장이 104경기에 이른다.
한일 월드컵 토너먼트에서 '마스크 투혼'이 원체 강렬해 전사 이미지가 선명하지만 높은 주력과 집중력, 준수한 양발 킥 력과 거칠면서도 약빠른 수비력을 두루 보유한 한국의 파울로 말디니(이탈리아)가 김 감독이었다. 실제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가 끝난 뒤 로이터 통신이 뽑은 베스트11에서 동일 포지션의 말디니, 에드미우손(브라질) 등을 따돌리고 당당히 레프트백 칸에 이름을 새기기도 했다.

김 감독은 "히딩크호에 승선할 수 있던 이유가 훈련과 실전을 똑같은 강도로 임한 '태도'에 있었다 생각한다. 항상 100%로 했다. 연습을 실전처럼 했기 때문에 실제로도 공격수와 싸운 적이 있다"면서 "나는 훈련할 때 공격을 막아야 하고 (안)정환이나 황선홍 선배 같은 경우 골을 넣어야 하니까 (그걸 적극적으로 수비하다) 피치에서 싸울 뻔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일 월드컵 때도 분위기가 험악해져서 히딩크 감독님이 코치진을 긴급 소집할 정도였다. (분위기를) 빨리 수습하란 지시를 내리셨다. 결국 선수들끼리 서로 사과하고 잘 마무리했다"며 23년 전 '월드컵 4강 신화' 뒷이야기를 귀띔했다.

김 감독은 2005년 11월 6일 인천 유나이티드전을 끝으로 정든 축구화를 벗었다. 1995년 전남 창단 멤버로 프로 데뷔 꿈을 이룬 뒤 한 팀에서만 250경기를 출장했다. 1992년부터 2004년까진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104경기 3골을 쌓았다. 레전드 수비수로서 남부러울 것 없는 커리어를 구축했다.
다만 끝내 해외 진출을 하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2002 월드컵이 끝나고 뉴캐슬 유나이티드(잉글랜드)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았지만 낮은 이적료와 구단 만류로 뜻을 접었다. 성사됐다면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거로 이름을 얻을 수 있었지만 종내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 J리그행도 적극 추진했지만 최종적으로 불발됐다.


"뉴캐슬에서 오퍼가 왔었다. 그런데 구단에서 이적을 불허했다. 그렇게 단념하고 뛰다 보니 전남 원클럽맨으로 은퇴를 하게 됐다"면서 "해외 진출에 대한 열망은 항상 있었다. 주위 동료들이 많이 가기도 했고. 가까운 일본에라도 꼭 가보고 싶었다. 갔다가 친정 팀으로 돌아오겠다 했는데도 그때 (전남 사령탑이) 여러 차례 바뀌셨다. 팀 사정상 이적은 안 된다는 말을 들었고 결국 전남에서 끝까지 커리어를 보내게 됐다"며 조금은 안타까운 맘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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