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골퍼의 노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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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토도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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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한국] 폭염이 기성을 부린 지난여름 한 달 반 동안 귀중한 경험을 했다.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았다. 오전 오후 각각 4시간씩, 하루 8시간 주 5일 강의를 듣고 1주일 간의 실습 교육도 받았다. 학창 시절보다 빡센 일정이었으나 아내와 함께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라 보람을 갖고 마칠 수 있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주는 국가고시도 치러 통과했다.
요양보호사란 65세 이상(특수 질병의 경우 65세 미만도 해당)으로 혼자서 거동할 수 없는 노인들을 전문적으로 돕는 사람이다. 신체활동에서부터 정신활동·일상생활 지원, 건강관리 등 요양보호사의 역할은 매우 광범위하다.
이 교육을 받고 실습 체험을 하면서 그동안 노화(老化)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고 무관심했나 절감했다. 노인에게 생기기 쉬운 질병에 대한 의학적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고 노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요양원과 주간보호센터 실습을 통해 노인들의 다양한 삶을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노년기의 특성은 노화가 신체적 사회적 심리적으로 거의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이다. 세포의 노화, 면역력 저하, 잔존능력의 저하, 회복 능력의 저하 등 신체적 노화는 되돌릴 수 없이 진행된다. 심리적으로는 우울증과 함께 내향성·조심성·경직성·회고성·의존성·애착심이 증가하고 사회적으로는 역할 상실, 경제적 빈곤, 유대감 상실, 사회적 고립 등의 특성을 보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체적 사회적 정신적 안녕을 유지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며 지역사회에서 차별 없이 자발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건강한 노화(healthy aging 또는 good aging)'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주변에 요양원 주간보호센터 등의 간판을 단 건물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WHO의 정의는 희망사항처럼 보인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 건강하지 못한 노인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누구나 노화를 피할 수 없듯 골퍼에게도 노화는 장강(長江)의 뒷물결처럼 닥친다. 시차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의 골퍼들도 그 길을 갔다. 천하를 호령하던 타이거 우즈도 이미 강 하구에 이르렀다.
그러나 골퍼의 노화는 일반적인 노화와 확실히 구별된다. 일반적인 노화는 신체적 사회적 심리적 노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지만 골프에선 다르게 나타난다. 골프에선 감성적 노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신체적 사회적 노화도 더디게 진행되는 양상을 보인다.
30여 년 전 가끔 찾던 지하 골프연습장에서 뵙던 할머니가 있었다. 먼발치에서 볼 때는 한 70 가까이 되었겠다고 생각했으나 레슨프로에게 물어보니 81세라고 했다. 이 할머니를 유심히 관찰한 것은 스윙이 너무나 부드럽고 우아했기 때문이다. 얼굴의 주름이나 목소리는 나이를 감출 수 없었으나 허리는 꼿꼿했다.
주변의 젊은 남자들이 힘을 잔뜩 들이고 볼과 무슨 원수라도 진 듯 기를 쓰고 두드려 패는 데만 열중하는데 이분은 백스윙과 팔로우 스루가 완벽히 이뤄지는 부드러운 스윙으로 연습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대단히 좋은 스윙' 정도가 아니라 완벽에 가까운 스윙이었다. 스윙은 아무런 옹이가 없이 물 흐르듯 부드러웠다.
궁금증이 도져 레슨프로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81세라고 했다. 6·25 전란 때 월남해 동대문시장에서 큰 포목상으로 성공한 뒤 나빠진 건강을 찾기 위해 동갑내기 남편과 골프를 시작했다고 했다.
70대에 접어들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노화를 피하기 어려운데 81세에 젊은이들이 수범으로 삼아야 할 스윙을 구사하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퍼팅 연습을 하는데 3~4m 거리의 퍼팅 성공률이 거의 80% 가까이 되었다.
연습이 끝나기를 기다려 할머니에게 다가가 정중히 말을 붙였다.
"정말 모두가 탐낼 좋은 스윙을 갖고 계십니다. 골프하신 지 오래되셨나 보죠?"
할머니는 이북 억양이 섞인 소리로 말했다.
"골프 시작한 지 한 15년 정도 됐습네다."
역산해 보면 65세쯤에 골프채를 잡았다는 얘기다. 그 나이에 골프를 시작해 저런 우아하고 교과서적인 스윙을 익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잘 배우셨나 봐요. 남들은 힘 빼는 것도 제대로 터득하기 힘든데…."
"시키는 대로 하기도 했지만 힘이 없어서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습디다. 쓸 힘이 없으니 부드럽게 스윙하는 수밖에 없지 않습네까?"
그러면서 멕시코에서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칠순을 기념해 부부가 멕시코 여행을 하다 어느 소도시에 묵게 되었는데 마침 그곳에 9홀짜리 골프장이 있어 라운드했다고 한다.
걸음 걷는 것도 힘들어 뵈는 노인 부부가 라운드하겠다니 골프장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그냥 코스 구경하는 것이 아니고 라운드를 직접 하겠다는 뜻이냐?"고 책임자가 되물었다.
"물론이다. 이렇게 멋진 코스에서 라운드하지 못하고 가면 평생 후회할 것이다"라며 호소했다.
두 노인의 눈빛이 하도 간절해 라운드가 허락되었고 부부는 대여채로 코스를 돌았다. 첫 홀에서 노인 부부가 멋진 스윙으로 티샷을 날리고 계속 우아한 스윙으로 순탄하게 라운드를 이어 가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했다. 특히 할머니의 스윙에 놀란 주민 한 사람은 자청해서 캐디를 하겠다고 나서기까지 했단다.
그러면서 "골프를 배운 지 얼마나 되었느냐" "그렇게 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등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골프를 배운 지 5년밖에 안 되었다는 말에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사람이 어떻게 하면 그렇게 골프를 잘할 수 있느냐고 물어서 "없는 힘 억지로 내려 하지 말고 그대로 휘두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주었다고 털어놓았다.
골프를 배운 덕에 남편과 18홀을 거뜬히 돌며 스코어도 100을 넘지 않는다고 했다. 연습하는 틈틈이 유연성과 근력을 키우기 위한 가벼운 체조를 하는 것을 보면 50~60대의 몸으로 보였다.
최근 수도권의 한 골프장에서 95세의 나이에 70타를 기록해 화제가 된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의 경우도 골프에 대한 샘솟는 열정으로 장강의 뒷물에 휩쓸리지 않은 표본이다. 60세가 넘어 골프를 시작해 30년간 100타 언저리를 맴돌다가 아흔이 넘어 캐디의 원포인트 레슨으로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얘기는 골프와 결별을 고민 중인 60~70대 골퍼들에게 칠흑 바다의 등댓불로 보인다. 학업에도 골프만큼 열성인 권 이사장은 2013년 한국외국어대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데 이어 최근 박사과정도 수료하고 논문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내가 다니는 골프연습장에서 보고 겪는 바로는 골프를 그만두는 이유는 대개 신체적 사회적 인 것이 대부분이다. 감성적으로 골프에 끌리지 않거나 몸이 골프를 견뎌내지 못하고 함께 라운드할 사람이 사라져 라운드 기회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골프에 대한 감성적 열정이 식지 않은 사람은 몸 어딘가가 부서져도 꾸준히 연습장을 찾는다. 라운드하면서도 자신의 스윙에 불만이 많고 스코어도 기대에 못미치지만 골프 자체에 대한 매료로 감성적 노화가 진행되지 않는 탓이다.
그래서 실제 라운드는 하지 않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장을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 스윙 메커니즘을 탐구하는 것 자체가 수수께끼를 푸는 쾌감은 준다는 이유다. 매일 연습장에서 지인들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몸을 움직여 운동 효과를 보는 것은 사회적 신체적 노화를 예방하는 부수 효과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무관심 무반응 무자극 흥미상실 같은 감성적 노화가 신체적 사회적 노화를 재촉하는 것 같다. 감성적 노화를 늦추는 것이야말로 신체적 사회적 노화를 막은 비법이 아닐까.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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