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0경기' 이영민 부천 감독, 19년 만의 승격 이끈 기적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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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토도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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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뉴스1) 안영준 기자 = "오늘 밤, 이영민 감독은 한국 축구에서 가장 행복한 축구인입니다." 이영민 부천FC 감독이 승격 후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아 하늘 높이 올라갔을 때, 중계 캐스터는 이렇게 말했다.
선수 시절 K리그 무대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무명의 선수였고, 지도자로서도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영민 감독이 한계를 넘어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이영민 감독이 이끄는 K리그2 부천은 지난 8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1 수원FC와의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3-2로 이겼다. 1차전에서 1-0으로 이겼던 부천은 1·2차전 합계 4-2 완승을 거두고 창단 19년 만에 K리그1 승격에 성공했다.
부천이 새 역사를 쓴 바로 다음 날, '뉴스1'이 이영민 감독과 만났다. 평소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 이영민 감독은 승격 직후 "오늘만큼은 코치진과 한잔하겠다"고 했고, 모처럼 늦은 시간까지 스태프들과 기쁨을 나눴다.
잠이 부족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의 얼굴은 밝았다. 핸드폰은 축하 전화로 쉴 틈 없이 울렸고, 메신저는 수백 개가 쌓였다. 점심 식사를 위해 찾은 음식점에선 식당 주인이 "승격을 축하한다"며 식용 꽃이 올라간 염소전을 '서비스'로 내 왔다.
이영민 감독은 "어젯밤은 정신없이 보내느라 몰랐는데, 축하가 쏟아지니 이제야 '승격'했다는 실감이 좀 나는 것 같다. 아내도 아침에 눈을 뜨니 이유 없이 웃음이 나온다고 하더라"며 멋쩍게 웃었다.
부천FC 구단이 처해 있는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번 승격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우선 부천은 2024년 기준 선수단 연봉 총액이 34억원인 '작은 클럽'이다. 1부리그 기업구단과는 비교도 안 되고, 같은 K리그2 수원 삼성의 88억원 대비 3분의 1 수준이다. 부천은 냉정히 말하면 스타급 선수도 없고 그동안 K리그 주류에서는 다소 벗어나 있던 구단이었다.

이영민 감독은 "그동안 준플레이오프만 가도 주변에선 '부천이 그 정도면 잘했네', '어차피 부천이 승격할 건 아니잖아' '기대 이상으로 잘했어'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엔 우리가 잘했구나 싶었는데, 계속 그런 말을 들으니 화가 났다. 그 시선과 편견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영민 감독은 매번 시즌을 시작하기 전에 미팅으로 한 시즌의 콘셉트를 정하는데, 올해는 그때부터 목표가 이미 '승격'이었다고 했다.
그리곤 차근차근 새 역사를 준비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K리그2 모든 팀이 '진짜' 승격을 목표로 하지는 못한다. 난 우리 부천이 '승격이 피부로 와닿는 목표인 팀'이 되기를 바랐다"면서 선수단 마인드 세팅부터 심혈을 기울였다.
이후 이영민 감독은 선수단에 시즌 막판까지 끊임없이 승격을 위한 동기부여를 심어줬다. 또한 주전뿐 아니라 백업 선수들까지 모두가 하나로 뭉치는 팀 분위기를 만들었다.
덕분에 부천은 K리그2 3위 이후 K리그2 PO와 승강 PO로 이어지는 강행군을 훌륭한 성적으로 마쳤고, 코리아컵에서도 K리그2 팀 중 유일하게 4강까지 오르는 등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 주축이 빠져도 조직력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갔고 시즌 막바지에도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그는 "수비까지 헌신적으로 하는 용병들은 물론, 전 선수단이 주전과 백업 모두 한마음으로 잘 해줬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한 시즌을 치렀다"며 제자들에게 공을 돌렸다.
'기적'의 배경에는 이영민 감독이 부천에서 차근차근 팀을 만든 '시간의 힘'도 있었다.

'파리목숨'인 K리그2 사령탑 세계에서 이영민 감독은 올해까지 5년째 이 팀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부천 역사상 최장기간 부임 기록이다. 이제 감독이 바사니 얼굴만 봐도 심정 변화를 알고, 선수들도 이영민 감독이 요구하는 축구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부천이 이룬 성과는 이영민 감독 개인적으로도 뜻깊다. 이영민 감독은 현역 시절 K리그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했지만, K리그 경기에는 한 번도 뛰지 못했다. 이후 내셔널리그(당시) KB국민은행에서 존재감 있는 수비수로 활약하다 은퇴했다.
지도자로 변신한 뒤에도 바로 도드라진 건 아니었다. 긴 시간 내공을 쌓았다. 2007년 KB국민은행 코치부터 시작해 FC 안양 코치, 감독대행, 감독을 했고, 안산 그리너스 코치와 감독대행, 중국 여자 U19 대표팀 코치 이후 2021년부터 부천에서 몸담고 있다. 지도자 경력만 18년 차다.
연예계로 비교하면 이영민 감독은 단번에 떠오른 대형 기획사 소속 스타가 아닌, 대학로에서 오랜 시간 내공을 쌓고 올라온 '노력파' 배우다.
그는 "그 긴 시간이 내게는 다 경험이 됐다. 코치로, 대행으로 여러 감독들이 어떻게 운영하는지 두 눈으로 다 봤다"면서 "감독이 된 뒤에도 연패, 연승 등 다양한 시간을 겪으며 오답 노트를 썼기에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정답을 찾아가는 게 수월했다. 경험은 나쁘건 좋건 결국은 자산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 덕분에 작년에 부상자가 많았을 때도 무너지지 않았고, 올해도 승부처마다 힘을 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18년의 시간이 쌓아 올린 내공이 있었기에 승격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이영민 감독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얻었다.
그는 "앞서 부천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말했는데, 사실 스스로도 한계를 느낀 적이 있었다. 부천이 잘하다가도 준플레이오프 등에서 연달아 떨어져 좌절할 때는 '아 이게 감독으로서의 내 한계인가, 나 때문에 안 되나' 생각도 했다"면서 "긴 시간이 쌓여 올해는 마음을 고쳐먹고, 그 한계도 같이 깨부수자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며 미소 지었다.
긴 시간 하부리그에 있던 이영민 감독은 안양에서 대행 시절 포함 23승, 안산에서 3승, 부천에서 73승을 기록, K리그2에서 99승을 기록했다.
승격의 밑거름이 됐던 K리그1 수원FC와의 승강 PO 1차전이 공교롭게도 100승 달성 경기였다. 이후 승강 PO 2차전마저 이겨 101승을 거두고 K리그1으로 올라가게 됐다.
인터뷰 말미에 "승격 순간 중계진이 '가장 행복한 축구인'이라고 소개했는데, 그 말에 동의하느냐"고 물었다.
이영민 감독은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한계를 깨고 원하던 꿈에 닿았는데, 당연히 가장 행복한 감독이죠."
tr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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