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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감독과 당신의 직장 상사는 다르지 않다 [경기장의 안과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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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토도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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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8일 전북 현대 거스 포옛 감독이 사임했습니다. 본 기사는 포옛 감독 사임 전에 작성된 기사입니다.

10월1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전북 현대의 열 번째 우승을 확정한 포옛 감독이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2025시즌 K리그1은 전북 현대 천하로 끝났다. 잔여 5경기 시점에서 우승이 확정될 정도로 압도적 강세였다. 승강 플레이오프 치욕이 불과 1년 전이었다. 기껏해야 AFC 챔피언스리그 순위권이라는 시즌 전 예상을 뒤엎은 초고속 부활이다. 거스 포옛 감독은 도대체 무슨 마술을 부린 걸까?

전북과 포옛 감독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냈는지를 알려면 2024시즌을 리뷰하면 된다. 2024년 4월 전북은 개막 한 달 만에 단 페트레스쿠 감독을 해임했다. 5월 말, 김두현 전 코치가 후임자로 왔다. 6월 주장이 술을 마시다가 걸려서 거액의 벌금 징계를 받았다. 같은 달 29일 홈에서 전북은 1-5로 참패했는데, 그날 저녁 일부 선수들이 KTX를 타고 서울로 놀러 갔다가 클럽에서 팬들에게 목격됐다. 9월 하위 스플릿 확정, 11월 승강 플레이오프 확정, 그리고 12월8일 전북은 2부 서울 이랜드를 따돌리고 간신히 1부에 잔류했다. 일주일 뒤 김두현 감독 계약해지. 이랬던 팀이 1년 만에 K리그 챔피언이 된 것이다.

11월5일 우승 기자회견에서 거스 포옛 감독은 “올 1월에 누군가 ‘전북이 우승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면 나는 ‘당신 취했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만큼 그가 부임할 당시의 팀 사정은 엉망이었다. 포옛 감독의 손은 빨랐다. 지난 시즌 팀 내에서 문제를 일으킨 선수들이 정리되었다. 그런데 큰 전술 변화 시도는 없었다. 전북은 이미 리그 정상급 기량을 갖춘 선수들을 보유한 상태였다. 전 시즌에 실패한 원인은 선수들의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팀이 갖춘 환경과 조직원 간 관계가 붕괴된 결과였다. 포옛 감독은 전북의 기존 플레이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선발 라인업에만 변화를 주는 수준에 그쳤다. 신임 감독이 범하기 쉬운 ‘지나친 전술 변화’ 함정에 빠지지 않은 셈이다.

시즌 초반 포옛 감독의 관리능력은 다시 한번 빛났다. 3월 들어 전북은 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 리그2의 4경기에서 내리 패했다. 그런 와중에 리그에서 전북은 안양과 대전 원정 2연전에 나섰다. 부정적 결과가 나온다면 지난 시즌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팬들 사이에서도 포옛 감독을 향한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안양 원정에서 포옛 감독은 시즌 구상에서 제외한 김진규와 홍정호를 소환했다. 그리고 1-0 승리를 지켜냈다.

대전 원정에서도 두 선수는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전북은 당시 리그 선두이던 대전을 2-0으로 완파했다. 센터백 박진섭이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으로 전진했고, 베테랑 홍정호가 중앙수비를 책임진 게 ‘신의 한 수’였다. 통상적으로 신임 감독은 시즌 전 수립한 구상을 최대한 고수하는 습성을 보인다. 오류가 발견되더라도 결국 옳았음을 증명하려는 본능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옛 감독은 당초 구상을 시즌 개막 두 달 만에 수정했다. 이렇게 빠른 대처는 드물다. 결과적으로 포옛 감독은 대전 원정에서 사용했던 선발진으로 리그 22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달렸다.

대단한 전술 구사는 없었다. 전북은 심플하고 단단하게 승리했다. 포옛 감독은 “선수들에게 복잡한 지시보다 명확한 원칙만 강조했다”라고 밝힌다. 전방에서 강하게 압박하고, 공수 전환 속도를 높인다는 ‘뻔한’ 원칙이었다. 시즌 내내 취재진은 승승장구한 비결이 궁금했지만, 선수들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전술적인 부분에서 특별한 훈련을 하진 않는다”였다. K리그 최고 전술가로 통하는 이정효 광주 FC 감독은 “포옛 감독이 성공한 이유는 기존 전술을 크게 건드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기 축구를 한답시고 기존 팀을 막 바꾸지 않았던 게 주효했다”라고 평가한다.

비결은 결국 감독의 관리능력이었다. 이승우는 “포옛 감독은 사생활을 터치하지 않는다. 국내 지도자들은 성적이 잘 나오면 자기 전술 덕분이고, 안 좋으면 선수들이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한 탓으로 돌린다”라고 말해 화제를 낳았다. 실제로 K리그 구단에서는 그런 일이 흔하다. 성적이 떨어지면 훈련 횟수가 늘어난다. 전지훈련이나 합숙처럼 통제된 상황을 만들어 반짝효과를 노리는 지도자가 많다. 포옛 감독은 “훈련장에서는 내가 선수들의 보스이지만, 퇴근 후 전주 시내를 걷다가 만나면 더는 보스가 아니다”라는 지론을 펼쳤다.

11월8일 전북 현대와 대전하나시티즌의 경기에서 이승우 선수가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퇴근 후 나는 보스가 아니다”

2000년대 FC 서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세뇰 귀네슈 감독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귀네슈 감독은 업무 영역을 확실히 구분해 선수단을 관리했다. 훈련장과 경기장 안은 그의 영토였다. 본인이 모든 것을 통제했다. 감독의 허락 없이는 구단 직원도 함부로 훈련장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외 영역에서 그는 군림하지 않았다. 귀네슈 감독은 선수는 물론 구단 직원들도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로서 대했다. 구단이 선수를 마케팅 행사에 섭외할 때도 “그건 구단이 알아서 할 일이다. 내게 보고할 필요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구단과 선수의 직접 소통을 막는 국내 지도자도 많다. 본인이 선수단을 완벽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포옛은 전형적인 관리자형 감독이다. 헤드코치(headcoach)보다 매니저(manager) 타입이다. 빅클럽일수록 세세한 기술이나 복잡한 전술보다 인사관리 능력이 감독에게 요구된다. 팀에 거대한 자아를 지닌 스타가 많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명장 카를로 안첼로티는 AC 밀란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를 다섯 번이나 제패했다. 당시 밀란에는 인자기, 피를로, 카카, 세도르프, 말디니 등이 있었고, 레알에는 호날두, 모드리치, 라모스, 비니시우스, 토니 크루스, 주드 벨링엄 등이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콧대와 자아 의식으로 충만한 슈퍼스타들이 모인 팀이었지만, 안첼로티 감독은 상황에 맞는 리더십으로 챔피언팀을 이끌었다. 지시나 설명보다는 참여와 위임으로 자존심이 센 스타들의 능력을 극대화한 것이다.

포옛 감독은 선수단 안에서 존경받는 선수도 잘 이용했다. ‘원클럽맨’ 최철순은 주전은 아니어도 구심점 역할을 했다. 포옛 감독은 그를 이름이 아니라 ‘레전드’라고 불렀다. 기존 질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담긴 호칭이었다. 감독으로부터 레전드로 불리는 대선배는 늘 훈련장에서 최선을 다했다.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도 불만은 일절 없었다. 그게 팀을 돕는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레전드의 헌신적 모습은 스타 후배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었다. 베테랑 홍정호는 편안함으로 화합에 일조했다. 이승우, 전진우, 송범근 등 한창 잘난 맛에 빠져도 될 만한 선수들이 그를 “회장님”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한다. 선발진의 막내인 2004년생 강상윤은 포옛 감독의 칭찬(“당장 유럽 어느 리그에서도 뛸 수 있다”)을 머금고 무럭무럭 자랐다. 국제축구연맹(FIFA) 산하 국제스포츠연구소는 강상윤에게 K리그 최고 몸값을 매겼다.

언론과 팬은 감독을 전술 능력으로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팀의 성패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부 사정으로 좌우될 때가 많다. 팀 내에서 감독이 얼마나 존경받는지, 리더십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 불만이 있는 구성원은 어떻게 관리되는지 등이 훨씬 중요하다. 직장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년 전 ‘똥밭’에서 구르던 전북을 왕좌로 이끈 포옛 감독이 그 사실을 입증했다.

홍재민 (축구 전문기자·레드재민tv 운영)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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