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그물에 걸린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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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토도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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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한국] 폭염이 수그러질 무렵 모처럼 골프연습장을 찾았다. 한참 어프로치 연습을 하는데 타겟 방향 왼쪽 그물 중간에서 꽤 큰 새가 퍼덕이고 있었다. 황토색과 잿빛이 뒤섞인 큰 날개 등 생김새로 보아 말똥가리 같았다. 발톱이 거물에 걸린 듯했다.
새는 그물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날개를 퍼득였으나 번번이 부리와 다리가 그물에 걸려 허사가 되었다. 어쩌다 발톱이 그물에서 벗어나 날개를 퍼득일 수 있었지만 말똥가리는 그물이 없는 공간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계속 그물을 향해 돌진했다. 타석에 가까운 상부 중간 부분은 그물이 없어 하늘로 열려 있는데도 말똥가리는 먼 곳의 열린 부분을 보지 못하는 듯했다.
들어왔던 길을 기억하면 빠져나가는 것도 어렵지 않을 텐데 말똥가리는 자신이 어디로 들어왔는지를 잊은 듯했다. 과연 저 새가 이 큰 장방형의 그물을 벗어나 자유롭게 날 수 있을까?
1시간 반 넘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으나 결국 새는 골프공이 쉼 없이 날아드는 가운데 수없이 탈출을 시도하다 지쳤는지 연습장 그물망 한 구석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라 그냥 연습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연습장에 나와보니 그물망에 걸린 새는 보이지 않았다. 연습장이 문을 닫은 밤 사이 그물이 없는 열린 공간을 찾아 날아간 모양이었다. 어제 그물에 걸려 버둥대는 새를 보고 안타까워하던 주인 아주머니가 "천만다행이지요!"하고 말했다. 연습하던 모두가 말똥가리가 무사히 그물을 빠져 나가기를 기원하는 눈빛들이 떠올랐다.
새는 인간보다 시력이 월등히 뛰어나다. 물수리는 60~90미터 상공에서 물속을 유영하는 작은 물고기를 사냥할 수 있을 정도다. 오목눈이는 나무가 빽빽한 숲 사이를 빠르게 날아다니면서도 날카로운 시력으로 나무껍질 속에 숨어있는 작은 벌레의 움직임을 감지해 잡아먹는다. 황조롱이는 20미터 상공에서 2㎜ 길이의 벌레를 잡아먹는다.
새는 포유류에 비해 눈이 크다. 수천 마리가 함께 날 때 충돌을 피해야 하고, 천적들을 감시하고, 멀리 있는 먹이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눈이 클수록 망막에 맺히는 상이 커서 물체를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년 유리창이나 투명한 방음벽 등에 부딪혀 죽는 새가 800만 마리나 된다고 한다. 인간보다 시력이 월등히 뛰어난 새가 왜 유리창은 못 알아보고 부딪힐까. 눈의 위치와 빛의 반사 때문이다. 사람은 두 눈이 전면을 향해 있지만 새의 눈은 안면 옆에 있어 입체감과 거리감이 떨어진다. 움직이는 물체를 포착하는 데는 최적화되어 있지만 가까운 거리의 미세한 차이를 식별하는 데는 취약하다. 그물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다.
그물에 걸린 새를 바라보는 연습장의 골프 애호가들이야말로 그물에 걸린 새가 아닐까. 어쩌다 골프와 인연이 닿아 그 그물에 휘감겨 버둥거리는 모습이 너무 닮았다. 골프가 펼쳐 보이는 오묘한 밀림을 엿본 골퍼들은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마치 구도자가 된 듯 골프 순례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결국 굴러떨어지고 말 바위를 산꼭대기에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의 형벌과 다를 바 없는 '목표가 없는 끝없는 게임(Endless game without goals)'을 하는 골퍼들은 결코 골프의 그물을 벗어날 수 없으리라.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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