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삶의 지침서 된 故 안성기… 정우성·이정재 배웅 속 영면 [HI★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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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토도사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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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배우 무게감 속 성실한 연기자의 표본이었다", "선배님은 한없이 고독하면서도 온화했던 철인." 故 안성기의 마지막은 경건했고 아름다웠다. 동료·선후배 영화인들은 눈물로 고인을 배웅, 생전 고인이 얼마나 선하고 올바른 사람이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9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故 안성기의 장례 미사와 영결식이 엄수됐다. 이날 오전 7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출관이 진행된 이후 명동성당에서 장례 미사가 진행됐다. 후배 배우인 정우성과 이정재가 영정과 금관문화훈장을 들었으며 설경구 박철민 유지태 박해일 조우진 주지훈이 굳은 표정으로 운구를 마쳤다. 설경구와 조우진은 거듭 눈가를 훔쳤고 정우성과 이정재 역시 수척해진 모습으로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현빈 주지훈 변요한 박철민 박상원 그리고 고인의 유작이 된 '한산: 용의 출현'을 연출한 김학민 감독 등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정준호가 유족들을 챙겼고 오지호 한예리 오광록 이준익 감독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 김보성 등이 함께 했다.

영결식에서는 고인의 약력을 돌아본 후 영화 '하녀' '황혼열차' 등 아역배우 시절부터의 '바람 불기 좋은 날' '만다라' '실미도' 등 영상들이 편집돼 고인의 생애 연기를 떠올리게 했다. 영상 속 故 안성기의 밝은 미소가 등장하자 곳곳에서는 오열이 터져 나왔다.
상주 자청하며 빈소 지켰던 정우성, 추모사 낭독
뒤이어 정우성이 조사를 낭독했다. 정우성은 "언제인지 기억을 되살리기도 어려운 시점 선배님께 처음 인사를 드렸다. 첫 마디는 '우성아', 마치 오랜 시간 알던 후배를 대하시듯 친근한 미소로 제 이름을 불러주셨다. 그 후로 2000년도 선배님과 촬영을 다녔다. 선배님은 참 쉽지않은 환경에도 누군가의 이름을 항상 따뜻하게 부르셨다. 과하지도 모자르지도 않는 깊이와 철학이 담겨 있었다.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심, 겸손, 절제 그렇게 선배님께서는 배려가 당연했고 자신에 대한 높임을 경계하고 부담스러워 하셨다"라고 돌아봤다.
거듭 울컥한 모습을 보인 정우성은 "선배님께선 한국영화를 온마음으로 품고 이어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배우 안성기를 넘어 영화인 안성기로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부여했다. 당신 스스로에게 참으로 엄격했던 분이었다. 그 엄격함은 곁에서 보기만 해도 무거웠다. 한없이 고독해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늘 의연하셨다. 선배님은 제게 철인이셨다. 지치지않는 가치관을, 온화한 미소로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으셨던 철인. 참으로 숭고하셨다"라면서 존경심을 내비쳤다.

정우성은 "모든 사람을 진실로 대하던 선배님, 배우의 품위, 인간의 품격을 지켜주신 선배님, 늘 무색무취로 자신를 지키려던 선배님은 찬란한 색으로 빛나셨다. 지나간 가치를 잊던 시대에 안성기의 언어로 표현했다. 선배님은 어떠셨나요. 부디 평안히 가시길 바랍니다. 선배님께선 제게 살아있는 성인이셨다"라며 진심을 다해 고인을 기렸다.
배창호 감독 "안 형, 국민배우 무게감 속 성실한 연기자였다"
이어 배창호 감독이 조사 낭독을 위해 마이크 앞에 섰다. 고인과 생전 13편의 영화를 함께 한 배창호 감독은 "1980년 광화문 다방에서 안 형을 우연히 만났다 어린시절 스크린의 모습을 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성인의 모습이 인상깊었다. 안 형이 충무로에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새로운 흐름을 불러넣을 연기자가 나타났음을 직감했다"라면서 처음 만났던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배 감독은 "안 형은 연이은 화제작을 만들었다. 이후 안 형 집에 자주 놀러가 연기와 영화에 대해 논의하고 같이 할 다음 작품을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우리집에 불쑥 찾아와 유명 커피 광고를 찍게 됐다며 영화 일에 집중할 수 있을지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라면서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이어 오랫동안 고인이 한 광고에만 출연한 이유가 오롯이 영화에만 집중하기 위함이었다고 밝힌 배 감독은 "어느덧 안 형은 국민배우가 됐다. 그 무게감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성실한 연기자의 표본이 됐다. 세월이 흘러 노역을 부탁하기까지 13편을 했다. 3년 전 오랜만에 만난 안 형은 투병소식을 전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럼에도 문화재단 일을 놓지 않았고 영화 '탄생'에도 출연했다"라고 전했다.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한 배 감독은 "그동안의 세월은 어디로 갔나. 영정 사진은 '기쁜 우리 젊은 날' 촬영장의 모습이다. 그땐 우리 모두에게 찬란하고 기뻤던 젊은 날이다. 그러나 인생이란 저물 때도 있기에 지금 이순간을 맞이했다. 마음이 아프지만 엄숙한 심정으로 보내드리려고 한다. 영화를 사랑한 안 형,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았던 신중했던, 투병을 말없이 감내했던 안 형, 그동안 즐거웠고 든든했고 고마웠다. 안형의 지난 세월은 그냥 흘러간 것이 아니다. 주옥같은 작품들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다. 이제 하늘에서 편히 쉬시길"이라며 따뜻했던 고인을 추모했다.
안다빈 작가 "아버지는 천국서도 영화만 생각하실 것"
고인의 아들인 안 작가는 단상에 올라 장례에 참석한 조문객과 영화인 협회 등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어 안 작가는 "아버님은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는 것을 가장 경계하셨다. 아버님은 천국에서도 영화만을 생각하고 역할을 준비하며 자랑스러운 직업정신을 지켜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 작가는 "사전에 상의가 된 부분은 아니지만 꼭 다른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아버지 서재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워낙 신성한 곳으로 생각했던 곳이다. 이번에 서재에 들어가니 아버지가 버리지 않았던 물건들이 보관돼 있었다. 그 중에 제가 5살 때 유치원 과제로 그렸던 그림에 편지를 써주신 것이 있었다. 제게 쓰신 편지이지만 모두에게 남긴 메시지 같았다"라며 흐느꼈다.
이와 함께 안 작가는 편지의 내용을 낭독했다. 안 작가는 "네가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날 아빠를 닮은, 너의 얼굴을 처음 본 순간 눈물이 글썽거렸다. 벌써 의젓해진 너를 보면 아빠는 이 세상은 무서울 게 없구나. 아빠는 항상 겸손하고 정직하고 남을 사랑하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길 바란다. 마음의 평화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떤 어려움에서도 자신을 잃지 말아라. 그러면 너가 나아갈 길이 보인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필요한 것은 착한 사람이다"라면서 끝내 오열했다.
故 안성기는 지난 5일 오전 9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향년 74세. 고인은 지난 2025년 12월 30일 오후 4시께 자택에서 음식물을 섭취하던 중 목에 음식물이 걸리며 쓰러졌고, 심폐소생술(CPR)을 받은 뒤 자택 인근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결국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안성기는 2019년 혈액암을 선고받은 뒤 이듬해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이후 암이 재발하면서 투병 생활을 계속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진행됐다.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다.
우다빈 기자 ekqls064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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