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소짓는 아내 - 15부적막하고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안방에는 깊고, 일정한 숨소리뿐만이 들려오고 있다. 이따금 부스럭거리는 이불이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누군가가 잠꼬대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으, 으흠.”목이 타는 듯 괴로움이 섞인 목소리가 안방을 울린다. 이에 호응하듯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사람이 깨어나는 듯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점점 잦아진다. 곧이어 짙은 어둠이 깔린 안방에는 작은 신음소리와 함께 부스럭거리며 침대 위에 사람의 그림자가 비틀거리며 앉는다.“……물.”갈라진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 안방 침대…
-
미소짓는 아내 - 14부어스름한 해질녘의 황혼 빛이 베란다 커튼 사이로 스며들며, 마루에 앉아있는 나사가 빠진 것처럼 멍한 분위기의 한 여성을 비춘다. 세상여파에 지친 직장인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끝마쳤는지, 긴 생머리는 아직도 물기를 머금고 있고, 샤워 하느라 살짝 달아오른 뺨은 거실의 차분한 공기 속에 천천히 식고 있다.코 위에 반쯤 걸쳐진 반무테 안경은 평소와 다르게 반쯤 흘러내려 그녀의 정신없는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고, 핑크빛이 감도는 두툼한 입술에선 연신 한숨이 터져 나오는 그녀의 이름은 정나은이다.…
-
미소짓는 아내 - 12부최악의 기분으로 시작한 자신과는 반대로 드넓은 하늘은 청량하고, 떠다니는 뭉게구름은 새하얀 와이셔츠처럼 산뜻함을 뽐내며 하늘을 유유자적 흘러가고 있다.‘게다가 어째서인지 오늘은 별로 손도 안 대고 있고.’정나은은 오늘도 얼마나 김우영에게 괴롭힘을 당할지 걱정을 했건만 그는 평소와 달리 가끔 자신의 몸을 더듬는 것 외에는 말을 거는 것조차 드물다. 남편과 싸웠던 일만 아니면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평온함에 정나은은 기분이 좋다.‘이대로라면 오늘도 일찍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은데?’안 그래도 오늘 일찍 들어가야 남…
-
미소짓는 아내 - 10부햇살이 가장 뜨겁게 달아오를 정오가 머지않은 오전.저녁이 되면 회사원들로 북적이는 번화가도 오전만큼은 적당한 한산함을 자랑한다. 딱 적당하게 내려쬐는 아침 햇살과 살살 불어오는 미풍을 즐길 여유도 없이 통화를 하며 이리저리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는 사람들 속 그들과 별 다를 것 없이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걸음을 옮기고 있는 두 남녀가 있다.“슬슬 점심이나 먹으러 갈까?”중년 남성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뒤따라오는 여성에게 제안한다.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한껏 치켜 올라간 눈매나 강렬한 눈빛은 …
-
미소짓는 아내 - 9부김우영은 정나은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책상 위에 올라선 그녀를 천천히 뜯어본다. 어스름한 어둠속에서 책상 위 스탠드 불빛만이 어둠을 몰아내며 정나은의 모습을 비춰준다.얼굴에는 채 닦아내지 못한 타액이 질척거리고 있고, 붉게 달아오른 뺨과 뜨거운 숨결을 토해내는 도톰한 붉은 입술은 수컷을 유혹하는 강렬한 자태를 자랑한다. 깔끔하게 틀어 올렸던 머리는 책상 밑에서 한 씨름 때문에 흐트러진 모습이 강한 자존심 때문에 남에겐 절대 보여주지 않을 모습에 더욱 가학욕구가 끓어오른다. 매끄러운 목선을 따라 이어진 탐스럽게 …
-
미소짓는 아내 - 8부퇴근시간이 훨씬 지난 지금에 이르러선 길거리는 수많은 직장인들로 넘쳐나고 있다. 회식을 가진 사람들이나 한 잔 거하게 걸치고 집으로 귀갓길을 서두르는 사람. 아직도 회사에 남아 퇴근길을 서두르는 사람들을 부럽게 바라보는 사람 등 도시의 밤은 휘황찬란하다.길거리에 넘쳐나는 직장인들 사이에도 그들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두 남녀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다. 다름 아닌 김우영과 정나은이다.‘설마 내기를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끌고 다닐 줄은…….’정나은은 김우영과 카페에서 내기를 시작하고 서로 계약서까지 작성을 끝…
-
미소짓는 아내 - 7부월요일의 사무실은 특히나 축 처지는 분위기다. 일주일의 시작을 활기차게 시작하는 월급쟁이는 분명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주말에 즐거운 광란의 밤을 보낸 뒤 다시 현실로 뚝 떨이지면 그 갭의 차이 때문에라도 축 처진다.하지만 이 축 처진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는다. 괜히 주 5일제가 있는 게 아니고, 괜히 업무 효율이라 단어가 있는 게 아니듯 월요병을 금방 떨쳐낸 사람들은 자신의 업무로 돌아간다. 다만 이들 중 몇몇만이 고민에 휩싸인 듯 업무조차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하아…….”그 중 한 명은 바로 정나은의 …
-
미소짓는 아내 - 6부한적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하나의 차가 있다. 기묘하리만치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 있는 자동차 안에는 잠든 안정수와 이런 분위기는 알 바 아니라는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최 사장과 이 정적을 즐기고 있는 김우영이 있다.‘아~무것도 안 보이네.’오로지 정나은만이 이 부자연스런 정적에 짜증을 내며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자동차 창문 너머로 바라보고 있다. 아니 필사적이라고 할 정도로 고개를 고정시킨 채 어둠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흐음……슬슬 찝쩍거려 볼까?’최 사장이 차를 몰고 …
-
미소짓는 아내 - 5부김수진은 오랜만에 남편과 먼 곳까지 나와서 기분이 좋다.집안에서 집안일만 하는 게 나쁘진 않다. 아침에 남편을 출근시키고 여유롭게 집안일을 하며 즐기는 아침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도 재미있고 동네 사람들과 장바구니를 들고 길거리에서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겁다. 그럼에도 절경이라 할 것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시골 풍경의 한적한 곳이지만 북적이는 사람들과 남이 해준 맛있는 음식, 무엇보다 오랜만에 맛보는 술이 몸에 스며드는 감각이다.“정말이지. 술 좀 적당히 먹어요.”남편은 자신의 만류에도 그저…
-
미소짓는 아내 - 4부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은 도시 서울.주말이면 이 숨 막히는 곳에서 뛰쳐나가 자연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들이 종종 찾는 곳이 있다. 차를 타고 서울근교와 경기도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자연산림장이나 작은 펜션들은 그런 지친 도시 현대인들을 상대로 장소를 제공해주는 곳이 많다.불타는 금요일이라는 말이 있듯 금요일 저녁이 되면 이런 펜션들에는 사람들이 북적이는데, 서울에서 차를 타고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이 한적한 마을의 이름도 없는 작은 뒷산에 지어진 펜션도 오늘은 만원사례를 맞이하고 있다.주위에 마을이라고 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