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춘추=인천]

인천에서 이율예의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는 순간 잠실이, 그리고 서울이 들썩였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너무 뻔한 말이 얼마나 극적일 수 있는지 보여준 밤이었다. SSG 랜더스가 9회말 2사 후 터진 2점 홈런 두 방으로 한화 이글스를 극적으로 꺾으면서 2025시즌 정규시즌 우승 팀을 결정지었다.

SSG는 1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홈 최종전에서 9회말 2사 후 터진 현원회와 이율예의 2점 홈런으로 한화를 6대 5로 꺾었다. 전날 키움전 승리로 이미 준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한 SSG는 이날 경기에서 주축 선발투수들과 불펜 필승조를 전력에서 제외했다. 선발 마운드엔 시즌 2승에 그친 최민준을 내세웠다. 이겨도 져도 순위에 영향이 없는 보너스 게임이었지만, 홈 최종전이라는 점과 일찌감치 매진을 이룬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주전 타자들로 라인업을 채웠다. 

경기 중반까지는 SSG가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다. 1회 박성한이 괴물 에이스 투수 코디 폰세를 상대로 선두타자 홈런을 터뜨려 선취점을 뽑았다. 1대 1로 균형을 이룬 6회말엔 고명준이 우익수쪽 적시타를 날려 2대1 리드를 잡았다. 올시즌 4번 만나 승리없이 3패만 당한 폰세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둘 절호의 기회가 왔다. 

평소 같으면 노경은-이로운-조병현으로 7, 8, 9회를 막으면 끝날 경기였다. 하지만 세 불펜 필승조 투수의 시즌 종료를 결정한 SSG는 추격조에 해당하는 투수들로 경기 후반을 풀어갔다. 6회 올라온 전영준이 7회에도 그대로 올라왔고, 한화가 좌타자를 대타로 내자 좌완 한두솔이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나 한두솔이 이도윤에게 동점 적시타를, 이진영에게 2점 홈런을 맞으면서 SSG는 7회에만 4실점, 2대 5로 역전을 허용했다. 

3점차로 뒤진 채 시작한 9회말 마지막 공격. 한화는 수순대로 마무리 김서현을 올렸고, 가볍게 2아웃이 되면서 그대로 경기가 끝나는 분위기였다. 이 대목에서 SSG의 승리 확률은 0.6%에 불과했다. 이미 잠실에선 LG가 NC에 패한 가운데, 이대로 한화가 승리하면 1위 LG와 승차를 0.5경기까지 줄일 수 있었다. 3일에 열리는 시즌 최종전까지 이기면 LG와 공동 1위가 되면서 1위 결정전이 성사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여기서 대타 류효승이 안타를 쳐 출루했다. 이어 연속 대타로 나온 현원회가 대형 좌월 2점 홈런을 날려 4대 5, 한 점차로 따라붙었다. 이때까지도 여전히 SSG의 승리 확률은 5.7%에 불과했다. 한화 양상문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가 김서현을 다독이고 내려왔다. 하지만 김서현은 정준재를 상대로 좀처럼 영점을 잡지 못하고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했다. SSG의 승리확률이 11.2%가 됐다. 그래도 여전히 아웃 하나만 잡으면 되는 상황이었고 한화의 승리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SSG의 승리로 경기가 끝나면서 2025시즌 KBO리그 1, 2위도 정해졌다. NC에 패한 뒤 절망적인 분위기에서 한화전을 지켜보던 LG는 거짓말 같은 한화의 패배 덕분에 자리에 앉아서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했다. 반면 잠시나마 역전 우승까지 꿈꿨던 한화는 마지막 아웃 하나를 남겨놓고 역전패하면서 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한화는 3일 KT를 상대로 최종전을 남겨두고 있지만, 이날 승리하더라도 LG와 승차 1경기로 순위는 바뀌지 않는다.

9회 추격의 투런을 날린 현원회는 데뷔 첫 홈런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홈런으로 장식했다. 이율예도 프로 데뷔 2호 홈런을 야구 인생은 물론 프로야구사에서도 오래도록 기억될 홈런으로 만들었다. 9회초 마지막 1아웃을 잡은 김성민은 프로 데뷔 첫 1군 등판에서 데뷔 첫 승이자 행운의 구원승을 거뒀다. 

경기후 이숭용 감독은 "시즌 홈 마지막 경기에서 팬들에게 좋은 선물을 드린 것 같다"며 "현원회와 이율예의 어메이징한 홈런이었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홈런을 두 유망주들이 해냈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성민의 첫 승도 축하한다"며 "마지막 홈경기에 만원 관중으로 화답해주신 팬분들께 감사드리고, 주신 에너지 잘 받아 포스트시즌에서도 좋은 경기력을 보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율예는 "꿈을 꾼 것만 같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타석에서 자신 있게 돌리자는 생각으로 임했다"며 "앞에 나간 타자 형들이 안타도 치고 홈런도 쳐서 이렇게 나에게 기회가 온 것 같다. 형들 덕분에 홈런을 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홈런을 친 상황에 대해선 "맞는 순간 넘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런데 상대 좌익수가 잡으려고 해서, 제발 넘어가라는 마음으로 타구를 바라봤다"고 회상했다. 대기 타석에서 "후회 없이 돌리자고 생각했다"는 현원회는 "후회를 남길 바에는 자신 있게 스윙하고 차라리 삼진을 당하자는 마음으로 타석에 섰다"고 밝혔다.

타자에서 투수로 전향 후 첫 1군 등판을 데뷔 첫 승으로 장식한 김성민은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나고 얼떨떨하다"며 "2군에서 투수로 전향하고 준비하면서 상상만 했던 순간을 이렇게 맞이하게 돼서 너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2군에서 많은 가르침과 잔소리를 해주신 투수 코치님들께 감사하고, 부족한 저를 빠른 시간에 1군에 불러주신 감독님, 코치님께도 너무 감사하다"며 "오늘 내가 잘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마운드에 오르니 긴장이 너무 심해 힘을 다 쓰지 못한 게 아쉽다. 떨리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고, 어떻게 던졌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 강화에서 함께 훈련했던 현원회, 이율예한테 너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