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단발머리 소녀에 부산항까지…가왕과 최희선이 연주할 ‘쌍 기타’ 제작기 [백스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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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통기타 하나 구해야겠는데?”
모든 것은 이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한국 대중음악계 유일무이한 가왕(歌王)이면서 젊은 시절 최고의 기타리스트였던 조용필이 소속사 YPC 관계자와 그의 밴드인 ‘위대한탄생’ 리더 최희선(기타)에게 건넨 말이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가왕이라고만 알고 있지, 젊은 시절 형님은 대한민국을 호령하던 기타리스트였어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타를 만져봤고, 얼마나 많은 기타를 가지고 있었겠어요. 그런데 통기타를 하나 구해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가 지난해 연말이었다. 전국투어 콘서트로 한창 무대에 서고 있을 시기였다. 당시를 떠올리며 최희선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도 조용필은 콘서트에서 일렉트로닉 기타를 손에 쥐고 밴드 위대한탄생과 함께 연주한다.
올해로 음악 인생 57년. 긴 세월만큼 무수히 많은 기타가 가왕의 손을 거쳤다. 다양한 기타를 다뤘지만, 가왕의 손에 딱 맞는 기타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 만난 것이 국산 토종 브랜드였다.
“재미없기로 소문났었던 내가….” (‘찰나’ 가사 중)
대중음악계에서 조용필은 ‘재미없는 사람’으로 꼽힌다. 음악할 때가 아닌 이상에서다. 최희선은 “(조용필은) 음악 외엔 아무것도 모르는, 재미없는 분이자 음악 외엔 다른 것엔 관심을 두지 않는 분”이라고 증언한다. 조용필 역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그 말이 맞다. (난) 음악밖에 모른다”며 “지금도 늘 집과 스튜디오만 오가고, 하루 종일 (음악을) 듣고 적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런 그에게 빠질 수 없는 것이 기타다. 그는 마틴, 테일러 등 해외 유수 브랜드의 기타를 직접 구매해 연습실, 사무실은 물론 집에서조차 손에서 놓지 않고, 음악 작업에 몰두한다.
악기와 연주자는 ‘영혼의 단짝’이어야 한다. 소리는 기본이고 무게, 크기, 디자인, 색상 등 모든 것이 마음에 딱 맞아야 친구처럼 함께 할 수 있다. 최희선은 “악기는 이 모든 것이 밸런스이자 만드는 사람들의 정성”이라고 했다.
가왕의 경우 무수히 많은 악기를 다루다가 최근엔 국내 토종 기타 브랜드인 크래프터의 어쿠스틱 기타를 쓰고 있다. 한창 기타를 찾던 시절 ‘블라인드 테스트’를 방불케 할 만큼 그에게 딱 맞는 악기를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당시 가왕이 브랜드도 모른 채 고른 악기가 바로 ‘크래프터’였다.
역시 대가는 ‘장비’를 가리지 않았다. 조용필이 처음 만진 크래프터 기타는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초고가 기타도 아니었다.
최희선은 “(형님은) 이미 세계 유명 브랜드 기타에 좋다는 것은 모두 써본 분이니 브랜드 인지도가 고려 대상은 아니었다”며 “우리나라 악기의 인지도나 역사는 해외 기타에 비해 떨어질 수 있지만, 기술력은 절대 모자라지 않다는 생각에 국산 브랜드의 악기를 추천했다”고 귀띰했다. “그중 역사가 깊고 장인정신으로 일궈온 성음악기(크래프터 전신) 기타와 다른 브랜드 몇 가지를 가져갔는데 크래프터를 선택택했다”고 최희선은 설명했다.
“그게 그 악기였어?”
가왕 조용필이 선택한 크래프터의 전신은 ‘성음기타’다. 해외 유명 어쿠스틱 기타 브랜드에 비하면 역사가 짧지만, 국내에선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한다.
성음기타가 태어난 곳은 서울 마포구 창전동의 작은 지하방. 1972년 4월 창업주인 박현권 명예회장을 포함한 4명의 제작자가 클래식 기타를 만들며 악기 시장을 함께 일으켰다. 현재는 손자인 박준석 대표가 크래프터를 이끌고 있다. 3대에 걸친 가업이다.
사실 박현권 명예회장과 가왕 조용필의 인연이 특별하다. 가왕에게도 무명인 시절이 있었다. 1969년 음악을 시작한 청년 조용필에게 낙원 악기상가는 최고의 놀이터였다. 그 시절 박현권 명예회장은 낙원상가에서 일하던 직원이었고, 조용필은 그곳을 즐겨 찾던 무명의 싱어송라이터로 인연을 맺었다.
당시 박 명예회장은 조용필에게 조만간 창업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고, 미8군 무대를 시작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던 가왕은 박 명예회장에게 “응원하겠다”며 진심 어린 마음을 건넸다. 이후 머지않아 1972년 성음의 시대가 열렸고, 3년 뒤 조용필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통해 정식 데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박 명예회장의 아들인 박인재 회장이 2세대 경영을 시작하며 사명을 ‘성음악기’로 개편했고, 크래프터 브랜드를 론칭했다. 사명이 크래프터 코리아로 바뀐 것은 2019년 현재의 박준석 대표가 3세대 경영에 발을 들이면서였다.
크래프터 코리아는 ‘장인 정신’으로 일궈온 회사다. 박준석 대표는 “1970년대엔 한국에서 기타를 제일 많이 만들었다. 한국은 전 세계의 기타 공장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산업은 급속도로 규모가 줄었다. 1990년대엔 기타 제작 공장이 해외로 빠졌고, 크래프터 코리아는 현재 국내 최대이자 마지막으로 남은 기타 회사다.
사실 초창기 기타 제작은 위탁생산 수준이었다. 박 대표는 “1970~80년대는 기술력이 월등하진 않았다”며 “미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제작 기지가 옮겨온 때였다. 당시엔 99% OEM(원천 장비 제조업체,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이었다”고 말했다 .
크래프터는 그 시기를 거쳐 착실히 성장했다. 단순히 악기를 찍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외관과 음향의 연구로 하나하나의 걸작을 만들어갔다. ‘취미 기타’ 인구가 많지 않은 탓에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수출에 집중했으나 2008~2009년에 접어들며 ‘K팝 스타’(SBS)와 같은 오디션, 홍대 인디신의 대두로 기타 시장이 본격적으로 꽃 피기 시작했다. 당시 성음악기가 취미 기타 연주자들에게 알음알음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희선은 크래프터 코리아에 대해 “단지 브랜드 인지도의 차이일 뿐 세계적인 기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난 기술력으로 아마추어부터 프로 연주자까지 사로잡는 기타를 만들고 있다”며 “비교 우위에 있는 제작 역량과 사운드, 뛰어난 디자인으로 한국형 어쿠스틱 기타의 길을 가고 있다”고 했다.
가왕 조용필의 커스텀 기타(LX G 7000ce Custom)와 한국의 살아있는 기타 전설 최희선의 어쿠스틱 기타(모델명 LX G 5000ce VVS Custom) 제작을 위한 첫 기획 회의는 지난 2월이었다.
두 거장의 기타 제작 과정은 여느 기타보다 시간이 길었다. 보통의 기타 제작 기간은 목재의 건조 기간을 제하고도 3개월. 하지만 두 대가의 기타 제작은 장장 반년이 걸렸다.
박준석 크래프터 코리아 대표는 “조용필, 최희선 선생님처럼 시대를 관통하는 뮤지션의 음악에 새끼 발가락을 담그는 것만 해도 황송한데 이렇게 기타를 만들 수 있게 돼 너무나 큰 영광이었다”며 “두 대가의 기타를 만들기 위해 브랜드의 모든 노하우와 자원을 넣었다”고 했다.
두 사람의 기타는 크래프터 기술력의 총체다. 그간 크래프터가 이어온 정체성과 헤리티지가 두 대의 기타에 녹아있다. 크래프터는 “한국식 어쿠스틱 기타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해” 그간 올곧게 한 길을 걸었다. 무엇보다 크래프터 기타의 가장 중요한 방향성은 “악기 본연의 가치와 가구로서의 심미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3대 경영진과 40명의 직원은 이를 위해 장인정신을 고집하며 모든 곳에 ‘피,땀, 눈물’을 쏟는다.
조용필의 기타는 크래프터의 최상위 기종의 스펙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기타 제작의 첫 작업은 ‘목재의 선택’. 목재의 종류가 무게와 사운드를 결정한다. 박 대표는 “기타에 사용되는 목재의 종류와 등급, 가공방식에 따라 기타가 낼 수 있는 사운드의 특성, 음량, 톤이 달라진다”며 “기타줄에서 발생한 진동이 목재를 타고 퍼져 바디 내부에서 공기의 파장을 일으키며 설계 의도에 따라 고유한 울림과 사운드로 변환된다”고 했다.
가왕의 기타에 사용된 목재는 두 종류다. 알프스 산맥에서 채집한 최상급 알파인 스프루스와 최상급 인디안 로즈우드다. 알파인 스프루스는 밝고 깔끔한 이 외관을 완성하는 색상으로 춥고 척박한 땅에서 자란 나무답게 밀도가 빽빽하고 단단한 경도를 갖고 있다. 박 대표는 “뽀얀 색상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목재”라고 귀띔했다. 인디안 로즈우즈는 적갈색 목재로 어쿠스틱 기타의 측면과 후판에 사용된다.
두 목재를 사용한 가왕의 기타는 깔끔하고 웅장한 저음을 만들고, 피치감과 해상도 있는 드라마틱한 사운드를 연출한다. 박 대표는 “기름지고 웅장하며 화려한 사운드를 낼 수 있어 대부분의 장르에 어울리는 기타”라고 했다.
가왕 기타에서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단연 핑거보드에 자리한 아트워크 인레이다. 박 대표는 “손에 꼽을 수도 없는 히트곡들을 추리고 추려 아트워크로 작업, 핑거보드 인레이로 장식했다”고 말했다. 전판과 후판을 자개로 장식한 것도 기타를 고급스럽게 만드는 요소다.
헤드 부분엔 ‘가왕’의 상징인 왕관이 자리하고 있고, 무대 위에서도 벗지 않는 선글라스 그림, 대한민국 최초로 ‘오빠 부대’를 이끈 원조 아이돌이라는 상징을 새긴 ‘OPPA’ 레터링도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히트곡도 핑거보드에 녹아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의미하는 부산 갈매기와 배의 닻,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담은 킬리만자로 산, ‘고추 잠자리’와 ‘일편단심 민들레야’에서 따온 잠자리와 민들레, ‘단발머리’와 ‘모나리자’, ‘창밖의 여자’를 함축한 창문과 단발머리 소녀도 흥미롭다. 소녀의 얼굴엔 눈썹을 그리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숫자 500은 ‘한오백년’, 날아오른 새는 ‘못 찾겠다 꾀꼬리’를 의미한다. 왕관 마이트는 ‘가왕’을 의미하는 마이크에 왕관을 씌운 것이라는 게 박 대표의 귀띔이다. 브릿지에 넣은 닻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상징한다.
가왕 기타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무게’다. 박준석 대표는 “편안한 연주감과 장시간 악기를 매고 계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최대한 가볍게 악기를 완성했다”고 귀띔했다. 비밀은 도장에 있다.
목재로 제작된 기타의 표면엔 도장(칠)이 올라간다. 이 도장을 얼마나 얇게 하느냐가 악기의 사운드와 무게를 좌우한다. 가왕의 기타는 목재가 칠을 빨아들여 도장 표면이 울룩불룩해질 정도로 얇은 도장면으로 완성, 평균보다 가벼운 무게의 악기로 만들어졌다. 박 대표는 “얇은 도장 면의 두께는 더욱 열린 사운드를 낼 수 있기에 두 가지 이상의 효과를 한 번에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희선의 시그니처 기타는 기타리스트에게 최적화된 기타로 태어났다. 알파인 스프루스를 오븐에 넣고 구워 ‘빈티지한 사운드’를 내는 공법을 사용했다. 빈티지 톤과 더불어 중저음이 강조되는 사운드를 낼 수 있도록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또 측면과 후판엔 좋은 반응성과 중·고음이 강조되는 음색의 하와이안 코아 목재를 사용, 다양한 스타일의 연주에 반응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하와이안 코아는 따뜻한 기후에서 자란 나무인 만큼 한겨울에 만나면 나무가 쪼개지는 등 민감한 목재다. 하지만 연주자의 성향에 맞게 에이징 과정을 거치면 중저음까지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타 장인들에게 안성맞춤인 목재다. 게다가 화려하고 아름다운 결을 가지고 있어 보기에도 좋다.
박 대표는 “선생님께서 악기의 사운드와 더불어 상판이 어두운 빈티지한 스타일의 외관을 원하셨는데, 결과적으로 예쁘게 제작된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했다.
이 기타는 그간 한국 대중음악계를 48년간 이끌어온 기타리스트 최희선의 상징성을 살렸다. 헤드 부분엔 최희선의 실루엣을 넣었고, 사운드에서도 최희선이 요구하는 방향성을 살렸다.
가왕과 최희선 기타의 바디 쉐이프는 ‘그랜드 오디토리움 (Grand Auditorium)’으로 만들어졌다. 크래프터가 제작하는 가장 대표적이고 모던한 바디 스타일이다. 가장 스펙트럼이 넓은 사운드를 연출하기에 큰 무대에서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들려주는 두 사람에게 잘 맞는 디자인이다. 박 대표는 특히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바디 쉐이프”라며 “편안하고 범용성이 높은 데다 스트럼, 핑거스타일 등 어떤 연주 방식도 쉽게 커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용필과 최희선은 이번에 제작한 기타로 콘서트 무대에선 호흡을 맞춘다. 최희선은 “소리의 공명이 세계적인 브랜드의 하이엔드 급 기타와 비교해도 손색없고, 무엇보다 연주하기 편하게 만들어졌다”며 “명확하고 선명한 음색, 풍부한 울림의 사운드가 잘 구현됐다”고 했다. 지난 6일 고척돔에서 진행된 KBS 2TV ‘광복 80주년 KBS 대기획 - 이 순간을 영원히 조용필’ 공연에서 최희선은 이 기타를 들고 ‘그 겨울의 찻집’, ‘허공’, ‘Q’,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연주했다. 찰랑찰랑하고 명징한 기타 소리가 고척돔을 가득 메웠다.
박준석 대표는 “최희선 선생님은 수많은 악기를 연주해 오신 대가이시기에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실 때마다 너무나 황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며 “대한민국의 악기 브랜드, 제작자들을 사랑하고 아껴주시는 마음에 큰 용기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왕의 커스텀 기타는 상업적으로 판매를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다. 박 대표는 그러나 “악기 비즈니스 측면에서 상업적인 성공이나 성과가 없더라도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큰 획을 그으신 조용필 선생님을 위한 기타를 제작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만 해도 큰 성과이자 영광이며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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