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쇼의 시대는 끝났지만··· [경기장의 안과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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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토도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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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7일(이하 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다저스타디움에는 관객 5만4137명이 운집했다. 홈 팀 LA 다저스가 8연패 뒤 7연승으로 애리조나로부터 내셔널리그(NL) 서부지구 1위를 탈환한 참이었다. 이 경기 상대가 바로 애리조나였다.
5만 관객이 구장을 메운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다저스는 그레그 매덕스, 애리조나는 랜디 존슨이라는 전설적인 투수 두 명을 선발로 예고했다. 이해가 빅리그 마지막 시즌이던 매덕스는 통산 355승을 거둔 대투수다. 존슨은 이 경기 전까지 통산 294승을 따냈고, 이듬해 마지막 시즌에서 300승을 채운다. 두 투수 모두 ‘명예의 전당’ 회원 자격이 부여된 첫해에 97%가 넘는 득표율로 새 회원이 됐다.
하지만 이날 실제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달랐다. 매덕스는 다음 날 샌디에이고와의 경기 선발로 돌려졌다. 메이저리그는 KBO리그와 달리 선발투수 예고가 의무가 아니다. 변경에 따른 페널티도 없다. 존슨은 전날 등판을 준비하다 등 부상을 당했다.
조 토레 다저스 감독은 매덕스 대신 스무 살 풋내기 루키를 선발투수로 투입했다. 이 투수의 이름은 클레이튼 커쇼. 커쇼는 이 시즌을 시작으로 18년 동안 다저스에서만 뛰며 통산 222승을 따냈다. 다저스 구단은 지난 9월18일 “커쇼가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라고 밝혔다. 커쇼는 매덕스와 마찬가지로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될 게 확실하다.
2008년 9월 다저스타디움에서 존슨을 대신해 애리조나 선발로 나선 투수도 역시 명예의 전당을 사실상 예약해놓았다. 커쇼와 마찬가지로 루키 시즌을 보내던 맥스 슈어저였다. 올해 37세인 커쇼보다 네 살 많은 슈어저는 9월22일 현재 통산 221승을 기록 중이다.
당시 경기는 다저스의 5-3 승리로 끝났다. 커쇼는 4이닝 3실점, 슈어저는 5이닝 3실점으로 모두 승패 기록을 얻지 못했다. 두 투수는 올해 8월8일 다저스타디움에서 맞대결을 치렀다. 이번엔 커쇼가 6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토론토 유니폼을 입은 슈어저는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패전.
9월19일 커쇼는 다저스타디움에서 자신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 등판했다. 상대는 자신이 가장 자주 맞붙었던 ‘앙숙’ 샌프란시스코였다. 5회 초 마지막 공을 던진 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 그를 두 팔로 껴안았다. 원정 팀 더그아웃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는 투수가 있었다. 이 경기 앞까지 메이저리그 통산 265승을 따낸 저스틴 벌랜더였다. 벌랜더도 명예의 전당 첫해 헌액이 확실시되는 대투수다. 커쇼와는 달리 내년에도 현역 생활을 이어간다는 뜻을 이미 밝혔다.
2010년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를 꼽으라면 이 세 명이다. 2010~2019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따낸 투수는 슈어저다. 이 기간 161승을 기록했다. 그다음이 160승의 벌랜더, 3위가 156승의 커쇼다. WAR 기록으로는 1위 커쇼(59.3), 2위 슈어저(54.9), 3위 벌랜더(53.8)다. 이 기간 커쇼와 슈어저는 최고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을 세 번 탔다. 벌랜더는 2011년과 2019년에 ‘2회 수상’했다. 그리고 2022년 세 번째 상을 받았다. 역대 메이저리그에서 사이영상 3회 이상 수상자는 11명뿐이다.
ERA+라는 통계가 있다. 투수의 평균자책점 기록을 시즌 및 구장 조건을 중립화해서 보여준다. 커쇼는 선수 생활 전체에서 ERA+ 154를 기록했다. 평균 대비 54% 뛰어났다는 의미다. 역대 2000이닝 이상 던진 선발투수 중 1위다. 슈어저는 통산 9이닝당 삼진 10.60개를 기록 중이다. 2500이닝 이상 던진 투수 중 슈어저보다 이 수치가 높은 투수는 ‘왼손 투수’ 존슨(10.81) 단 한 명이다. 오른손으로는 슈어저가 이 기준에서 역대 최고다. 그리고 벌랜더는 세 명 중 유일하게 3000이닝을 넘겼고, 가장 많은 승리(265승)와 WAR(84.5)을 기록했다.
선발투수 이닝이 감소한 이유
‘시대를 대표하는 에이스’는 어느 시기에나 존재했다. 하지만 이 세 명 이전과 이후로 크게 다른 점이 있다. ‘200이닝’이라는 숫자다.
커쇼는 2010-2015년 기간에 다섯 번 시즌 200이닝을 넘겼다. 2014년엔 198과 3분의 1이닝으로 아깝게 미달했다. 2016년 허리를 다친 뒤론 부상을 달고 살며 200이닝을 채운 적이 없다. 슈어저는 2013-2018년 6년 연속 200이닝을 넘겼다. 셋 중 가장 이른 2005년에 데뷔했던 벌랜더는 통산 열두 번이나 이 기준을 충족시켰다. 2019년 223이닝이 마지막이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200이닝을 넘긴 투수는 딱 네 명. 시애틀의 로건 길버트가 208과 3분의 2이닝으로 최다였다. 그리고 네 명 중 올해 200이닝을 돌파할 가능성이 있는 투수는 로건 웹 단 한 명이다. 선발투수가 모든 이닝을 책임지는 ‘완투’는 이제 매우 희귀한 기록이 됐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전체 완투는 28회로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1968년 NL 사이영상 수상자 밥 깁슨은 그해 혼자 28완투를 했다.
벌랜더가 데뷔했던 2005년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200+이닝 투수는 50명이었다. 2010년에 45명이었고, 2015년엔 14명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코로나19 단축 시즌 다음 해인 2021년엔 4명이었고 이후 매년 한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2000년대부터 진행돼온 ‘구속 혁명’은 선발투수 이닝 감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구속 향상은 부상 가능성을 높인다. 그래서 구단들은 투구와 이닝수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투수일수록 그렇다. 시속 100마일을 넘기는 구원투수가 흔해짐에 따라 불펜 비중도 늘어났다. 그 결과 오늘날 ‘에이스’는 예전보다 더 적은 이닝을 던진다. 이를 아쉬워하는 야구 팬도 많다.
하지만 너무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구속 혁명’의 덕으로 에이스를 더 오래 볼 수 있다. 벌랜더는 올해 42세 나이에도 평균 시속 94.0마일 강속구를 던진다. 41세 슈어저는 시속 93.5마일이다. 2008년 9월7일 슈어저에게 선발 자리를 양보했던 존슨은 전성기에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 강속구를 던졌다. 하지만 그해 포심 구속은 시속 91.5마일에 불과했다. 이 경기에서 다저스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한 이는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 박찬호였다. 박찬호는 2010년 37세 나이로 마지막 메이저리그 시즌을 맞았다. 구원으로만 뛰었던 박찬호의 그해 패스트볼 구속은 시속 91.9마일에 그쳤다.
최민규 (한국야구학회 이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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