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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케치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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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소라


블루스케치 5부


아침부터 반녀석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굳이 듣고싶지 않았지만 태혁은 왜 이렇게 녀석들이 수근거리는지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첫 시간이 영어시간이었다..

원래 담임이 그 시간을 맡고 있었는데 얼마전 약간 큰 수술을 받은 후였다.

매번 몇몇 다른 영어선생이 땜빵수업에 들어오곤 했는데 얼마전부터 젊은 여선생이 영어시간을 대신하고 있었다.

녀석들이 수근거리는 이유는 그 젊은 여선생이 몇달간 우리들의 담임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인해서였다..

태혁은 당치도 않은소리라 생각했다.

고등학교에는 특히 남자 고등학교에는 여선생이 그리 흔하지 않다.

있다면 거의 결혼을 한 펑퍼짐한 몸매를 소유한 아줌마들 뿐이었다..

그들은 한창 젊은 태혁과 같은 나이의 학생들에겐 오로지 머리를 잘 굴릴줄 아는 얄미운 곰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물론 몇몇 녀석들은 그런 모습에 빠져있곤 했지만..그건 여자를 경험해 보지못해 생기는 하나의 환상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녀같이 젊은 여선생은 마치 숨겨놓은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한창 혈기가 끓어오르고 있는 승냥이 같은 녀석들을 그런 양같은 여자에게 맡기는 어리석은 일을 하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크로마뇽인'을 연상시키는 세계사선생이 그들의 담임이 될 가능성이 클거란 생각이 들었다..또한,그사람으로 인해 태혁의

학교생활이 더욱 힘들거란 확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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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날 어땠냐??"

어느새 자신의 곁으로 온 철한이 뜻모를 웃음을 날렸다.

"뭐가??"

"자식..다알면서..."

그제서야 태혁은 녀석의 말에 의미를 알아들었다.

"그냥 갔다."

"뭐??...정말이야??"

"응.."

"미친놈...차려준 밥상도 못쳐먹냐??"

"......"

철한의 말을 흘려들으며 태혁은 순간 미수를 떠올렸다..

조명아래 춤을 추던 그 모습을...

"얘기 들어보니 꽤 괜찮은것 같던데...걔 너한테 반한것 같다더라.."

"연락하기로 했어."

"그래?? 자식 그래도 구르는 재주는 있구나.."

그제서야 철한은 태혁을 바라보며 웃었다.

"넌 소원성취했냐??"

"소원성취??...하하..하긴 맞는말이다..휴 말마라...그년 상의 벗기는 데만도 한 양동이 정도 땀흘렸다..여관까지 잘 따라들어 오더니 막상 일

벌일려니까 빼는거 있지...때려서 기절시켜 먹을수도 없는일이고..."

"하하..."

"그렇다고 내가 손가락 빨고 있을놈이냐??...있는땀 없는땀 열라 쏟아부으며 결국은 쓱싹 해버렸지...씨팔..열라 아끼더니 막상 넣어보니까

언젠가 헤프다 싶은 년보다 더 헐겁더라...펌프질 하면서도 욕밖에 안나오더라..싸긴 또 얼마나 많이 싸는지 끝나고 보니까 침대 시트가

오줌싼것 같더라니까..에이..씨팔..."

"하하하"

녀석은 뭐가 그리 분한지 오만가지 인상을 쓰며 재잘거렸다..

태혁은 그런 녀석의 말을 들으며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그년한테 들으니까 미순가 하는 그애 괜찮은 애인거 같더라..하긴..모르지 또...그나물에 그밥일지.."

"선생 들어올때 됐다..그만 하자.."

"그래.."

철한이 자리를 뜬 후에 태혁은 그날 그렇게 미수를 보낼 수 있었던것이 다행이란 느낌이 들었다..그리곤 아침부터 책상에 몸을 엎드려버렸다..


얼마후 반녀석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그 젊은 여선생이 교실로 들어선것 같았다.

태혁은 슬그머니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

하얀색 브라우스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약간 높은 힐을 신고 들어서고 있었다..

전형적인 선생님 복장이었다.

언젠가 철한이 녀석이 한말이 생각났다.

'선생들은 의상도 고지식하다니까..젊으면 짧은 치마도 입고 다니면 오죽좋아??가뜩이나 더워 죽겠는데 인도사람도 아니고 가릴건 다가리니'

녀석은 알까..그것 또한 혈기있는 우리를 자제시키기 위한 한 방편이라는것을..

"선생님 저희반 담임을 맡게 된다는게 사실입니까??"

녀석들은 아침부터 수근거리던 그 이야기가 진실인지 궁금해 못참겠던지 첫 질문을 던졌다..

여선생은 의미모를 웃음을 흘리며 교탁위에 섰다..

의례 정해진 인사를 한 후 드디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지난 몇시간 너희들과 함께 했는데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게 됐네.."

순간 반이 떠나갈듯 녀석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태혁은 그녀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도 내심 그런 학교의 결정을 이해하기 힘들었다..그리고 그것도 잠깐 다시금 엎드려 눈을

감았다.


사회가 냉정하다지만 학교도 그점에선 비슷했다..

특히 대입을 앞둔 인문계 학교는 일찍부터 두갈래로 분리됐다.

하나는 대학갈놈이고 하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대학문턱도 밟지 못할 놈들이었다.

태혁은 후자쪽에서도 으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뒷자리에서 하루종일 그가 무얼하든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 대부분의 선생들도 그런모습을 묵인하고 있었다.


"이반 담임선생님이 몸이 좋지 않으셔서 앞으로 몇달간 너희들의 담임을 맡게됐어..앞으로 너희들이 많이 도와줄거라 믿어..잘지내보자.."

새로운 담임의 입에서 말이 끝나자 녀석들은 두서없는 질문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태혁은 다른건 몰라도 이번시간은 수업을 진행하기 힘들거란 생각이 들었다.


'늙은이 뱀파이어'

그것은 그들 담임의 별명이었다.

그는 이곳 사립학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그는 처세술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높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았고 그만큼 학교내 그의 파워는 강했다.

그는 어둠속에 피를 빠는 흡혈귀처럼 언제나 매서운 눈길을 흘리며 학교를 누볐다.

그리고 그 눈길에 걸려든 녀석들은 온몸에 기운이 쪽 빠질 정도가 되어서야 그에게서 헤어나곤 했다..그는 언어의 고문자였다..특히 그는

때려서 될놈과 안될놈을 너무나 정확히 가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그가 제일 좋아하는 먹이는 시퍼런 돈이었다..학교로 수시로

부모들이 드나들었지만 누구도 그가 돈을 받아 먹는걸 볼 수 없었다..다만 돈을 가져다 바친 그들 아들의 입을 통해서야 막연히 그러한 사실을

들을 뿐이었다..그런 사람이었기에 그가 학교에 몸이 아파 당분간 못나올것이란 이야기를 들었을때 태혁은 그것이 인과응보라 생각해버렸다.

이상한것은 그런 흡혈귀가 자신에게는 처음부터 달려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태혁은 모르고있었다..그 몰래 태혁의 어머니가 밖에서 그 흡혈귀를 몇번이나 만났다는 사실을...


태혁의 예상처럼 새로운 담임은 녀석들의 먹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밀려드는 녀석들의 질문공세에 대처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모면해보려 했지만 역부족인것 같았다.

'서희수'..그녀의 본명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막 사립학교에 발을 디딘 여자였다.

늙은 선생들의 눈에는 이제막 태어난 간난쟁이로 보일터였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녀 또한 한마리 영악한 곰이 되어갈것이라 생각했다.

학교의 모든 인기를 한몸에 받고있는 대일고의 스타중의 스타..

태혁도 그녀에 대해 기억하는 한가지가 있었다.

그녀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스크린속에서 배우들의 몸짓하나 하나 놓치기 싫어 직접 영어를 배웠다고..

혹시나 영화속 배우들의 한마디의 대사가 다른 뜻으로 어느정도 걸러져서 자막으로 내보내 지는것이 아닐까 의문이 들어 영어를 배웠다는

엉뚱한 여자..

어찌 들으면 우스웠지만 어찌 생각하면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이제는 그 걸림돌을 극복해낸 그 여자의 성격에서 약간의 부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태혁은 자신 스스로가 어떠한 목표를 갖고 있지 못했기에...


태혁은 엎드린채 철한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분명 녀석은 잠에 취해 있으리라...

그러나 녀석은 고개를 빳빳히 쳐든채로 선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녀석의 얼굴엔 웃음이 배여 있었다.

여느 녀석들처럼 저녀석도 새로움 담임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걸일까??...

태혁은 조금 놀랍다 느끼며 스르르 눈을 감아버렸다.


"야! 담임 죽이지 않냐??...난 이제막 신세계로 접어든 느낌이다.."

학교를 마치고 녀석이 그동안 닫고 있던 입을 열기 시작했다.

"뭐가??"

"일단 그 늙은이를 당분간 안봐도 된다는게 좋잖아...왠지 앞으로 내 인생이 꽃필것 같은 느낌이 든다..하하..."

"자식..."

"야..태혁아!"

"왜??"

"너 사랑해봤냐??"

"갑가기 무슨말이야??"

"아까 우리 담임 문으로 들어설때 가슴에 바늘이 꽃혀지는 느낌이 들더라고.."

"미친놈"

"아냐...이건 그렇게 간단히 넘길 일이 아니야..몇몇 기집애들 만나봤지만 이런느낌은 처음이야..."

"그래서 어쩔건데..상대는 선생인데..그것도 담임이고.."

"씨팔...영화같은 이야기는 현실에 없다더냐??..."

"영화고 현실이고 간에 분명한건 너와 담임은 7년차란 거다.."

"뭐 어떤 놈들은 십년이상 차이도 있더라..도둑놈들.."

녀석은 어지간히 담임에게 반한 모양이었다.

"두고봐라..내가 너 기절하게 만들어 줄테니.."

"부디 성공하길 빈다.."

"역시..넌 내 친구다..하하하"


당구장에서 한게임 뽀개자던 철한과 헤어진후 미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태혁의 전화에 가족이외 다른사람 특히 여자의 경우는 처음이었다.

귀를타고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지금 끝났어??"

"응"

"선생님 말씀 잘듣고 많이 배웠어?? 하하하"

"끊어.."

"화났어??"

"..."

"장난도 못하니??...미안해.."

"괜찮아.."

"지금 뭐해??"

"집에 가는길이야..."

"나...안보고싶어??"

"...."

"난 보고싶은데..."

"어딘데??"

"나도 밖이야..강의 끝나고 친구들만나 차마시고 지금 헤어졌어."

"만날래??"

"정말??...어디서??"

"니가 정해"

"그럼..00에서보자..지금.."

"나 교복입었어.."

"그럼어쩌지?? 집에 갔다가 나올래??"

"귀찮아.그냥갈게.."

"그래 그럼.."

태혁은 자신이 왜 그랬는지 자신도 의문이 들었다.

분명한건 그녀가 태혁보다 두살연상이라는 것이었고 나이차이야 별것 아니었지만 태혁은 아직까지 교복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문일까...괜한 오기를 부렸던건...

태혁은 집으로 가던 발길을 돌려 약속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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